경북 군위군에는 천년고찰인 산사들이 많이 있었다.
경북 영천에서 신령으로 가는 길을 따라 은혜사와 기기암을 들려서 다시 군위 가는 길로 들어서면,
팔공산 자락의 제2석굴암 그리고 인각사를 지나
다시 군위읍으로 들어서면 지보사와 '김수환 추기경 생가' 이정표가 같이 나온다.
엊그제 소신공양을 하신 '지보사 문수스님'께 분향하러 가는 길에 김수환추기경님의 생가를 참배하고 싶었다.
물론 종교는 틀려도 평소 존경하던 큰 어른의 생가를 참배 한다는 것이 가슴 벅찬 기쁨이었다.
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에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면서 모든이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시절(4살)에서 신학교 진학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던 생가라고 한다.
모든이들의 존경을 받으셨던, 추기경님의 생가는 생각보다는 너무 쓸쓸했다.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것을 생각하고,
이곳에 와보니 툇마루 한켠에 놓인 방명록 노트만 길손을 반길뿐이었다.
주변은 깨끗하게 정리되었지만, 아무도 오지않는 적막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 그대로 사진속에서 미소로 반겨 주셨다.
아주 작은 이 집은 거의 허물어져 폐가인 상태에서 2006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작은 방 2개와 부엌이 딸린 우리들의 어린시절에 보았던,한국의 전형적인 초가집이었다.
현재는 마을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생가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북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마을'
김수환 추기경님이 생전에 계실때에는,알려지지 않았던 이 집은 그분이 하늘로 가신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선종하신 직후 주말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는데,점점 20~30명으로 줄어들고
내가 갔던 그날의 방명록에는 5명의 방문객이 있었다.
관리인도 없고, 아무도없는 쓸쓸한 집이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것은 이 마을 주민들이 틈틈히 찾아와서
주변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빈~집이지만 환한 미소로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가르쳐 주신 큰 어른이 사셨던 '생가'를 다녀 왔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영광스러움으로 영원히 잊지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