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를 몇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경남 하동에 있는 소설속의 배경이었던 평사리와 악양의 넓은 들판과 지리산, 화개장터, 연곡사
섬진강과 구례를 늘 고향처럼 찾아 다녔었다.
그러다보니 '토지'를 쓰신 박경리 선생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20년전에 헌 책방을 다니면서 1976년 5월20일 초판 정가 1,700원 (토지 1권~9권)을 샀었고
늘 소중함으로 간직하고 있다.
읽고 또 읽고...
이번에 '통영' 여행을 하면서 박경리 기념관을 가게 되었다.
박경리 선생님의 흔적은 여러 곳에 있다.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 하동 평사리의 토지 문학관, 그리고 고향인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
통영 앞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자락에 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전시관이다.
전시관 안에 있는 '작가와의 대화'라고 이름 붙여진 공간이다.
나의 어머니 유품 들 중에는 외할머니가 물려주신 '손 재봉틀'이 있다.
박경리 선생님의 유품 중에도 역시 재봉틀이 눈에 띄인다.
지면 패랭이(꽃잔디)
박경리 선생님이 쓰신 글귀가 생각난다.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향은 삶의 기초이다.
특히 문학하는 사람들은 어린시절의 추억이 밑천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고향의 소중함을 강조하셨다.
통영 박경리 기념관 앞에서 올해에 처음으로 '진달래꽃'을 보았다.
방가지 똥
보기 드문 하얀 민들레를 통영에서 볼 수 있었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9 '박경리 기념관' 건물
'박경리 공원'이라고 적힌 안내 표시를 따라가면 선생의 묘소가는 길이다.
옛날의 그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세상 끝의 끝으로 올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그 세월 그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것은 오로지 적막 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하얀 '마가렛'꽃과 잘 어울리는 시비이다.
무엇이 그리 수줍은지 수선화가 모두 고개를 숙였다.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 가는 길은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여동생을 찍고 있는 제부의 모습을 내가 또 찍었다.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 가는 길에는 진달래가 참 많이도 피었다.
꽃망울이 맺힌 진달래가 숲 속 에 가득하다.
묘소 앞 소나무 밑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는 진달래!
편안한 휴식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안식처
선생의 친필로 쓰신 묘비이다.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 오는 길에 '명자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화창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