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산사의 풍경

범어사 산내암자 계명암에서

nami2 2022. 3. 11. 21:30

미세먼지는 오늘도 희뿌연하게 하늘을 점령 했었고, 매우나쁨에서 한단계 아래인 '나쁨'이었다.

점점 확산되는 코로나 세상에서  덩달아 붙어다니는 미세먼지라는 불청객 때문에 밖으로 나다니면 안되겠으나

갑자기 생겨난 우울증 모드에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아직은 진달래가 피기에는 때이른 계절이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진달래와 생강나무꽃을 찾으러 암자가 있는 금정산으로 올라갔다. 

여러 곳의 범어사 산내암자를 돌아다니면서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반복을 했으나, 만나고 싶었던 진달래는 꽃봉오리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3월 중순으로 접어들어야 진달래꽃이 보일 것인가

올해는 꽃피는 시기가 지난해보다 보름 정도 늦는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 같았다.

 

범어사 청련암 한켠의 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하다보니, 누군가의 재를 올리는 의식이 있는지

법당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따끈한 커피 한잔을 하면서 그냥 멍~~

그러면서도 지인과 나누는 카톡의 대화에서 혼자라는 것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청련암에서 나와서 그냥 범어사 경내로 내려 가려다가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이 걷고싶어서, 금정산 계명봉 아래에 있는  계명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은 절에 가는 날이 아니라서 계명암으로 가는 산길은 정말 아무도 없었다.

초하루, 보름, 관음재일에는  계명암으로 가는 산길에 제법 불자들이 보였건만

오늘은 이름이 붙은 그런, 절에 가는 날이 아니라서  아무도 가지않는, 가파른 산길을 겁도없이 그냥 올라갔다.

멧돼지가 돌아다니는 계명암인데...

인적이 없는 가파른 산길 계명암인데....

마음이 심란스러워서 우울증 모드가 된다는 것이, 두려움도 잊게 하는 몹쓸 것이라는 것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정말 암자로 오르는 길에는 단 한명도  인기척이 없었다.

멧돼지가 출몰한다면 어쩔 것인가, 가지고 간 나무 지팡이가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겠지, 설마 부처님 전에 가는데 죽기야 하겠나?

이생각 저생각 하다보니 어느새 계명암 일주문 앞에 도착했다.

 

계명암에는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산길 초입에 나무 지팡이를 계명암에서 많이 만들어 놨다.

누구든지 암자에 갈때, 나무 지팡이를 짚고 가라는 스님들의 배려였다.

 

돌틈 옆에서 '수선화'꽃이 눈인사를 했다.

이른 봄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계명암 뒷곁 화단에서 노란 '크로커스'꽃을 만났다.

꽃은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마음을 웃게 해주는 것 같았다.

꽃을 보니 우울증이 저절로 사라지는듯 했다.

 

흙속에서 꽃봉오리가 올라와서, 꽃을 피우는 것은 모두 신기했다.

하얀 색깔의 크로커스꽃은 볼수록 신기했으나

때가 이른봄이라서인지, 흙속에서 활짝 핀 녀석은 딱 한송이였다.

 

히야신스 꽃봉오리도 제법 많이 눈에 띄였으나, 꽃 송이는 딱 한송이였다.

암자에서 만난 작은 꽃들이  우울했던 마음에 미소를 짓게 했다.

두려움을 떨쳐내며, 혼자서라도  암자에 잘 올라갔었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도 없는 암자의

작은 화단가에서 수선화가 제법 예쁜 모습으로 아는체를 했다. 

 

계명암 약사전 앞의 홍매화는 홀로 피었다가 어느새 꽃이 지고 있었다.

 

법당에도 ,약사전에도  기도하는 신발들이 보이지 않았다.

산꼭대기 암자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암자를 지키고 있었을뿐이었다.

 

계명암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금정산 정상 고당봉이 

미세먼지는 그런대로 깨끗했으나, 햇볕 때문에 역광이 되어서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스님들의 수행정진 하는 요사채

 

아무도 없는  암자에서 시원스럽게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계명암에는 뜰앞에 슬리퍼가 놓여 있을뿐,

이리저리 앞으로 뒤로 전각 주변을 돌아다녀도 인기척이 없었다.

이런 날도 있었구나,  혼자였기에 더욱 쓸쓸함을 느꼈다.

 

금정산 범어사 산내암자 계명암은 영험한 관음기도처로 알려져서, 많은 불자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십 수년을 그렇게 많이 올라 갔었던  계명암 법당에

오늘 처럼 아무도 없다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인 것 같았다.

 

돌담 옆에 누군가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쓸쓸했던 이른 봄날에

우울증 모드가 마음을 헤집어놨기에, 겁도없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서 암자에 들렸더니

그 암자 역시 아무도 없는 빈 암자가 되어서 쓸쓸함은 여전했다.

그래도 이곳 저곳 화단가에서  흙속을 비집고 올라와서 앙증스러움을 보여주었던

작은 요정 같은 꽃들이 있어서 쓸쓸했던 마음이 편안함으로 바뀌어서 산을 내려왔다.

산을 오르기 전,  오른쪽에 잔뜩 만들어 놓은 나무지팡이들이 가파른 산길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편하게 갈수 있는 지팡이  그리고 산길에서 만나는 멧돼지를 방어하는 무기....

그냥 계명암 스님들의 배려에 감사함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