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남해 충렬사

nami2 2010. 8. 30. 23:44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에 위치한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그리고 충열사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관음포 앞 바다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곳이기도하다.

                                                                         충열사 '외삼문'

                                                                  남해 충열사 사적 제 233호

                                 이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는데, 충렬사의 상세한 유래가 적혀 있다.

         옛날에는  충열사 앞의  호충암(護忠庵)에서 승장 1명,승려10명이 교대로 지켰으며,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충열사는 남해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의 사당으로 만들어져 왔다.

                                                                 충민공비(忠愍公碑)

 

         1598년 11월19일에 이순신 삼도 수군 통제사가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1633년 '향인' 김여빈과 고승후가

         이를 슬퍼해서 초옥 사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 추모함에 따라 '현령 이정건'이 충민공비를 세웠다.

         1643년에 충무공 시호가 책봉되었고,1658년 조정에서 사당을 신축함과동시에 충민공비를 매몰하고,

         이 충무공 비를 건립하였다. 

         1973년에 남해 충열사가 사적 제 233호로 지정되어 재정비사업중 매몰된 충민공비가 발견된 것을

         다시 세운 것이 오늘에 이르고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사진을 모신 사당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묘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진왜란중 노량해전에 참전 1598년 11월19일

              관음포 앞 바다에서 순국하였으며, 공의 유구는 최초로 관음포에 올려졌고

              이곳 남해 충열사에 안치되었다가  고금도를 거쳐 충남 아산 현충사로 운구되기전의 '가묘'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34년 되는 1632년에 지역의 선비들이 노량해전과 충무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던  조그만 사당에서 시작되었다. 

            1659년 통제사 정익이 다시 지었고,1662년에는 나라에서 충렬사라는 이름도 내렸다. 

            통영의 충열사와 함께 충열이라는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인조10년(1632) 유림들이

            옛터에 작은 집을 짓고,제사를 지냈던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노량해전지

                          지금은 남해대교가 있으나 , 1588년 12월에는 이곳 바다에서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대해전이 있었던 곳이기도하다.

                          충열사와 남해대교 그 가운데에 당시의 거북선과 같은 크기의 거북선이 바다에 떠있다.

                          늦은 저녁에 사진을 찍다보니, 날이 어두워서 그런지 거북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유배지를 가기위해서 나룻배를 탓던곳이기도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유배를 떠나오는 사람들의 심정은 서글프기도 했겠지만, 아름다운 섬에 와서

           귀양살이 하는 것도 지금의 내가 생각할때는  '귀양살이는 서글퍼도, 이곳에서의 삶은 아름다웠을것이라고 한다.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은  남해 대교가 있는 바다는 어둠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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