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2월 초순의 텃밭 풍경

nami2 2024. 2. 7. 22:43

태풍이라고 착각 할 만큼의 거센 바람이 잦아들었으나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설명절이 코 앞으로 다가와서 그냥 마음만 바쁠뿐....

춥다는 느낌 때문인지
자꾸만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것이 혹시 나이 탓인가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게으름을 피운다고 누가 일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설명절 차례상에 올릴 시금치를 뜯으러 텃밭으로 나가면서

바라본 하늘이 언제 저렇게 예뻤었나 새삼스럽다는 생각을 해봤다.
벌써 열흘째 지긋지긋 할 정도로 우중충했으니까...
어쩌다가 맑게 갠 하늘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닌가 황송한 마음으로 웃어봤다.

진짜 얼마만에 보았던 맑은 풍경이었는지
우중충함이 사라진 하늘은 미세먼지도 없는 아주 깨끗한 모습이었다.
텃밭으로 가는 들길을 지나면서 마주친 매화도 맑은 날씨 덕분에
더욱 화사하게 예뻐 보였고, 스치듯 풍겨나오는 매화 향기도 달콤했으나
옷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는 음력으로 섣달 추위라고 과시하듯 매섭기만 했다.

얼마나 오랫만에 보게 된 풍경인지
추운 날씨였지만
티끌 하나 없는 맑은 하늘 덕분에
텃밭으로 가는 발걸음이 꽤나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날씨는 춥거나말거나
매서운 바람이 불거나말거나
봄까치 꽃은 더욱 화사하게 피고 있었다.

텃밭 한켠에 심어놨던 수선화 새싹이
뾰족 뾰족 땅위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진짜 앙증맞은 오묘함이다.

차례상에 올려도 되지 않을까
10월에 씨를 뿌린 시금치는
민망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은근히 추웠던 겨울 날씨가 시금치 성장을 방해 한 것인지
기대한 만큼의 실망...그냥 웃어야 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고라니 발자국이 듬성듬성

그동안 크게 자란 시금치는

모두 고라니 밥이 되었다는 씁쓸한 이야기였다.

 

치커리 위에 그물망이 없었다면
치커리가 이렇게 예쁘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라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갔던  흔적이 곳곳에서 보여졌다.

시금치 밭에서 들여본 치커리밭은
여전히 그물망 속에서
파릇파릇 예쁘게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겨울 텃밭의 웬수는 고라니~~!!

추위속에서도 겨울 내내 자라고 있었던
양배추가 신기하기만 했다.
배추와 봄동은 고라니가 쳐먹었어도
양배추는

절대로 먹지 않았음이 다행스러웠다.

설 명절에 쪽파를 쓰려고 했었지만
쪽파 역시도 그렇게 많이 자라지 않았다.
진짜 추운 겨울이었음을 실감했다.

고라니가 유채 만큼은
입을 대지 않았던 이유는 씁쓸레한 맛뿐

달착지근한 맛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해마다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자라고 있는
유채를 겨울에도 제법 뜯어 먹었건만
올 겨울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
아예 뜯어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청경채 꼬라지가 기가막혔다.
새도 먹었고, 고라니도 먹었다.
그런 와중에  봄이 온다고
꽃봉오리가  노르스름하게 맺혀 있었다.

겨울을 지낸
붉은 갓은 아주 예쁜 모습이다.
엊그제 비가 흠씬 내려서인지
더욱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웠다.

 

나중에  쪽파와 갓과 유채를 섞어서
김치를 담그면 맛있을 것 같다.

대파도 그런대로 뽑아 먹을 만큼 자랐다.

대파 밭 옆의 냉이가 유혹을 했다.
꽃대 올라오기 전에 빨리 캐라고...

그동안 비가 많이 내렸기에
냉이를 호미로 캤더니 

뿌리에 거의 흙 범벅이다.

기왕 밭에 갔으니까
대파, 쪽파, 냉이를 캐서 손질을 했다.
흙범벅을 집으로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

냉이 캔 것이 얼마나 흙이 많이 묻었는지
빗물 받아 놓은 것으로 대충 씻어서
집으로 가져 가기로 했다.

밭에서 대충 씻은 후
집에서 냉이를 씻는데도
얼마나 많은 흙탕물이 나오는지?
그래도 통통한 냉이를 캤다는 것이 좋았다.

겨울 내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자랐던 대파 뿌리가 마음에 들었다.

감기 걸렸을 때,  멸치 육수 끓일때
꼭 필요한 대파 뿌리는
이맘때 캐면 요긴하게 사용하게 된다.

텃밭에서 바라본 맑은 풍경이
늘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언제 어느때 또 변덕을 부릴지
봄이 오는 길목은

날씨의 변덕 때문에 늘 긴장할뿐이다.

 

날씨 덕분에
오랫만에  예쁜 매화를 볼 수 있었다.

텃밭 한켠에도 봄이 온 것 같았다.
그냥 꽃만 보려고 심어 놓은 나무인데
이렇게 예쁘게 꽃이 피어주었다.

매실이 튼실하게 열리지 않아도 좋으니
오래도록 그윽한 향기를 내뿜면서
꽃만 예쁘게 피워줬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매화가 지고나면, 살구꽃이 필 것이며
살구꽃이 질때면, 복사꽃이 필 것이고
이렇듯 봄날은 지금 부터 시작인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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