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겨울 텃밭, 김장배추 뽑는 날

nami2 2023. 12. 12. 22:27

극심한 겨울 가뭄에서 갑자기 겨울 장마가 된듯...
포근하기만 했던 날씨는 우중충으로 돌변했고,바람은 심하게 불었으며
내리던 비는 하루를 잠시 휴식을 한 후 주말 까지 계속 비소식이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배추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더 달착지근 하게 맛이 들고, 더 고소해진다는 이유로
들판에는 여전히 배추들이 대기상태로

김장 김치로 뽑힐 날만 기다리는 것이 요즘 이곳의 들판 풍경이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날씨가 맑으면서  영하로 내려가는 것은 괜찮지만
잘 키워진 배추가 빗물 속에서  며칠동안 지낸다는 것은 봐줄수가 없었다.
웬지 신경이 쓰여서 배추를 뽑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날씨가 포근한 날에는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하필이면 우중충하고 바람부는 날에 배추를 뽑느냐고...?
밭 옆을 지나가면서  말 참견 하는 사람도 더러는 있었지만
며칠동안 내리는 빗속에서 들판의 텃밭에 머무는 배추보다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김장 순번을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밭으로갔다.
춥거나 말거나 배추를 뽑고, 집으로 운반하는 것이 우선인데,
그래도 모두 뽑아내고 나니까 찬비가 부슬부슬 내리면서 옷을 적시게 했다.

이른 봄 2월에 매화 꽃향기가 날릴때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 봄까치꽃이
텃밭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은 12월이거늘,어쩌라고 봄꽃이 피는것인지...?
그러거나 말거나 꽃은 예뻤다.
봄까치 꽃말은 '기쁜소식'이다.

텃밭의 민들레꽃은 그냥 지천이다.
민들레를 뜯어먹기 위해서 일부러 키우는데
겨울인지, 봄인지 분간도 못하는 것 같았다.
민들레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광대나물꽃도 역시
봄인지 겨울인지 계절 감각이 없는듯 했다.
광대나물 꽃말은 '봄맞이' 였다.

방가지똥 역시 봄꽃이지만
12월 초겨울에 꽃이 피면 어쩔 것인지
텃밭은 온통 봄꽃이다.

방가지똥이라는 이름을 가진 들풀꽃은

방아깨비의 속어인 방가지와 똥이 합쳐진 것인데
방가지 똥은 방아깨비 똥이라는 뜻으로
줄기나 잎을 자르면 나오는 유액이
방아깨비의 똥과 닮았다는데서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방가지똥 꽃말은 '정'이라고 한다.

초가을에 배추 모종 22포기를 심었다.
정성을 들인 만큼 배추는 솔직 했다.
단 1포기도
실망을 주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일단 몇포기를 뽑아서 모양을 보았다.
속이 꽉차서 단단했다.

마트에 잔뜩 쌓아 놓은 배추보다
우리 배추가 더 예쁘게 생겼다.

운반 할 것과 또 비가 내릴 것을 생각해서
우선 11포기를 뽑았다.
비가 많이 내리면  배추뽑기는 중단 될 것이고
그래서 밭에 남겨두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마음을 비웠다.

 

남겨진 11포기를 바라보면서
제발 오늘은 비가 더이상 내리지 않기를 바랬다.

대파 밭에는 냉이가 가득이다.
냉이는 한겨울에
뿌리째 캐다 먹는 것이 맛이 있다.

배추도 뽑아야 했고
당근도 캐야 하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그동안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서
땅이 딱딱해졌기에 당근을 캘 수가 없었다.
또 잘키운 배추는 비를 맞으면 안되는 일..
비가 많이 내려도 걱정
비가 내리지 않아도 걱정
농사 짓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인 것 같다.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서
배추 22포기를 모두 뽑았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는 배추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양배추가 제법 단단해졌다.
신기했다.
텃밭농사 9년만에
처음으로 심어봤던 양배추였다.

비가 내리니까
하루동안 더 예뻐진 것 같은 붉은 갓이다.
곧 김장을 하게되면 양념으로 사용 될 채소이다.

배추를 뽑아낸 빈 밭과
겨울에도 튼실하게 자랄 대파 밭이다.

배추를 모두 뽑아내고 나니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2월 14일에 자동차로 실어다 주겠다는

이웃과의 약속은 지킬 수가 없이 자꾸 비가 내리기에

급한 마음에 배추를 뽑아서 혼자 운반을 해야만 했다.

 

밭에서 집 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해마다 힘든 것은 농사보다는 수확한 채소 운반하는 일인데...

올해도 역시 젖먹던 힘 까지 쏟아내야 했다. 

 

두번을 왔다갔다 할 때는 빗방울만 몇개씩 떨어졌는데
마지막 배추를 가지러 갔을때는

본격적인 비가 내려서 약간은 썰렁한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무사히 배추 22포기가 베란다에 있으니까  마음은 편안했다.
마음 내킬때 소금에 절여서 김치를 담그면 될 것이고
비가 계속 내려도 나는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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