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헛다리 긁는 것 같은
호들갑의 '한파주의보' 문자 메세지가 이번에는 적중한 것 같았다.
지난 밤 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져서
새벽까지 영하 5도~ 6도 까지 내려가더니, 오늘 오전 10시쯤에는
영하 8도 까지 떨어지면서 하루종일 기온은 영하에 머물렀다.
그동안 영상10도~12도를 넘나들다가
갑자기 영하의 날씨가 되다보니 춥다고 움츠리기 보다는
추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북극곰 처럼 은근한 즐거움이 되었다.
가장 혹독하게 추운날
이마가 지끈지끈 아플 만큼 느껴지는 그런 강추위에는
늘 그랬듯이 일부러 겨울바다를 보러가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었다.
전생의 고향이 북극이었는지?
에스키모인 처럼, 최대한의 따뜻한 옷으로 감싼채 차디찬 겨울바람을
실감하고 싶어서 정말 춥다고 하는 날에 혼자서 겨울바다를 서성이게 되었다.
벌써 25년째
겨울 중에서 가장 춥다고 하는 날에는
일부러 텅빈 겨울 해수욕장으로 가서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그런 바람을 맞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세상에 대한 무슨 응어리가 그리 많은지?
그러다보니 일기예보에서 가장 춥다고 하는 날에는 늘...
이곳 저곳 부산 주변의 겨울 해수욕장을 찾게 된다는 것이
누군가는 청승이라고 할런지는 모르나
내 나름은 속이 후련해지고 있음에
오히려 그것이 큰 즐거움이 되는 것 같았다.
임랑해수욕장은 동해남부에 위치한 아주 작은 해수욕장이며
늘 한적한 바다라는 것이 매력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곳이다.
더구나 이곳 포구의 등대는
흔한 빨간등대와 하얀등대가 아닌
물고기 등대라는 것이 이색적이다.
임랑해수욕장에는 인적도 없었고
그 흔한 갈매기도 보이지 않는 아주 쓸쓸한
겨울바다 그 자체였다.
너무 춥다보니, 빈 벤치들은 많았으나
그곳에 앉아서
따끈한 차 한잔 마실 여유도 만들지 못했다.
무수한 발자국들은
그래도 겨울바다를 찾은 사람들이
가끔은 있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텅 빈 해수욕장에 인기척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맨발이었고
춥기만한 겨울 해수욕장에서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촤르륵 촤르륵...
자갈 구르는 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서 꽤나 듣기좋았다.
또다시 맨발의 인기척이 있었다.
앞에 지나간 사람은 남자분이였기에
말을 걸어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여자분이었기에 말을 걸어봤다.
이 분들은 먼곳 김해에서
일부러 이곳 임랑해수욕장 까지
맨발 걷기를 하러 왔다고 했다.
하루에 6시간씩 모래사장을 걷는데...
생각보다 훨씬 바닷물이 따뜻했다고 한다.
그분은 나에게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라고 했지만
이젯껏 바닷가에 살면서도
단 한번도 발을 담근 적이 없는 나로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고
운동화와 양말 벗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해서인지
그냥 부러움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여름날에 해수욕 하듯이
첨벙거리며 맨발 걷기 하는
그분들의 나이를 짐작해보건데
대략 70대 중반 처럼 보여졌다.
아무도 없는 빈 바다
파도소리는 듣기 좋았으며
밀려왔다가 부서지는 하얀 포말도 멋져보였다.
자칫하다가 운동화속에 물이 들어갈뻔했다.
이렇게 파도가 모래사장 까지
올라올 것이 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재미있었다.
또다시 혼자서 잘노는 아이가 된듯...
넓은 바다는 늘 심심치 않게 해주었기에
가끔 마음이 미쳐갈 때 바다로 나오게 된다.
맨발걷는 사람들이 또 나탔다.
아마도 앞에 갔던 사람들과 일행인 것 같았다.
건강도 좋지만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떨칠수가 없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텐트속에는
몇몇 여자분들의 수다방인듯 했다.
겨울바다의 낭만...
그다지 젊은 사람들은 아닌듯 보여졌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긴 해안가를 걸어서 뒤를 돌아보니
처음 걷기 시작했던
포구의 물고기 등대가 있는 곳이 가물가물이었다.
해안가 주변에는 애기동백꽃이
겨울바다를 멋지게 장식해놓은 것 처럼
아주 예쁘게 피고 있었다.
해수욕장을 빠져나와서
갈맷길 코스를 따라 걷다보니
바닷물 속에서 겨울을 즐기는 녀석들은
갈매기가 아닌 오리와 검은 물닭들이었다.
겨울을 멋지게 즐기는 물닭들
임랑해수욕장 부터 시작되는 해안 길은
부산 갈맷길 1코스 1구간인데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올 때 까지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우두커니 승강장에서 서있는 것보다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걸었더니 꽤 걸어온듯 했다.
멀리 몇개의 등대가 한꺼번에 보이는 것을 보니
어촌 마을인 문중마을과 칠암마을의 중간지점에 서있는 것 같았다.
최대한으로 줌인을 해서 등대를 찍었더니
몰려있는 등대는 아주 가깝게 보여졌으나
실제로는 30분쯤 더 걸어가야, 띄엄 띄엄 서있는 등대를 만날수 있었다.
마음은 더 걷고 싶었지만
늘 즉흥적인 경솔함 때문에 얼만큼 걷다보면 배고픔을 느끼게 했고
그 허기라는 것이 항상 걷기를 중단하게 하는 것 같았다.
배낭속에 귤과 빵 한조각과 따뜻한 차가 있었으나
해안가 벤치에 앉아서
그것들을 먹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다는 것이 복병이 된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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