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은
진짜 겨울 같은 날씨였기에 옷만 따뜻하게 입고 집을 나선다면
걷기운동 하기에도 그다지 큰 불편은 없는것 같았다.
옷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차가웠고, 땅은 얼어 있었고
빗물이 고여있는 주변에는 얼음도 아주 꽁꽁 얼어 있는 것을 보면서
서늘함 보다는 좀 더 강한 싸늘함이 웬지 기분을 좋게 했다.
추운 것이 더 좋았음은 아무래도 전생의 고향은 북극이 아닐까
또다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여서 참 유감스럽기도 했으나
모처럼의 추위는 걷기운동 하기에도 꽤나 활력을 주는 것 같아서
문 밖으로 나가게 되면 발걸음이 더욱 씩씩해지는 듯 했다.
하는 일이 뚜렷하게 없어도 늘 바쁜 나날들이 계속되다보니
늦은 오후 4시쯤 걷기운동을 나가게 된다.
겨울 들길도 어느때는 삭막함뿐이라서 지루하기만 했지만
산책을 하면서 주변을 제대로 잘 살펴보면
그런대로 눈요기 거리가 있어서인지 심심찮게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하루 걷기 목표량은 9천보에서 10,000보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 목표를 위해서 추위도 마다않고
길 위를 배회하듯, 걷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들 대단하다는 생각이지만
그 틈새에 나자신도 끼어 있음이 어느 때는 대견하여 픽~ 웃어보기도 한다.
영하 7~9도까지 기온이 떨어져서
들길에 피고 있었던 매화가
모두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엉망은 커녕
좀 더 예쁜 꽃이 피고 있었음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약간은 주눅이 들은 것 같은...
기운없는 표정을 꽃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추위를 견뎌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첫새벽에는 영하 8도의 날씨가 계속되지만
그래도 한낮의 기온은 영상 1~2도
꽃들을 생각하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추위에 후즐근...
그래도 꽃봉오리는 멀쩡했다.
들길에서 '딱새 숫컷'을 만났다.
녀석은 어찌나 행동이 빠른지
겨우 사진을 찍어봤다.
엊그제 찍어놓은 '딱새 암컷'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딱새 숫컷이 더 예쁜 것 같았다.
시골동네를 몇바퀴씩 돌고난 다음
그리고 들길을 계속 걸었더니
바다가 있는 동쪽 하늘에 둥근 달이 떠올랐다.
정확한 시간은 오후 5시40분
날짜를 짚어봤더니
오늘이 또 음력 보름이었다.
왜 그렇게 시간이 잘 가는 것인지?
엊그제 보름달을 봤는데
또다시 한달...
속절없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뿐이다.
동쪽에서 달이 떠올랐기에
해가 지고 있는 서쪽을 바라보니
저녁 노을이 예쁘게 물들고 있었다.
들길을 걸어서 아파트로 가고 있는데
검은 녀석이 야옹 야옹 하면서 길을 막아섰다.
어린아기가 응석을 부리듯...자꾸 따라오는데
평소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주춤 하다가 또 길을 막길래
사진을 찍어주면서 서로 바라보고 서있었다.
이 검은 녀석은 텃밭 이웃이
5~6년 동안 먹이와 물을 주면서 보살폈는데
그 이웃이 출타중인지, 밭에 나오지 않으니까
들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응석을 부리는 것 같다.
고양이는 개 만큼은 무섭지 않았으나
동물을 무조건 싫어하는 나로서는 어찌할 방법을 몰라서
그냥 쳐다보고 서있었다가
다른 사람이 오길래 얼른 도망치듯, 그 길을 지나쳤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달은 더 높이 떠올랐다.
나무가지에 걸린 보름달을 보면서
곧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길을 가다가 놀이감을 만난듯...
어느새 달이 나를 따라오는 것인지
내가 달을 따라 다니는 것인지
또다시 엉뚱한 짓으로 시간을 붙잡았다.
아직은 어둠은 없었지만
어슴푸레한 저녁에 달을 쫒아가면서
언덕 위 까지 올라갔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달빛은
점점 예쁜 색으로 변해갔다.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 했을 때는 어느새 땅거미가 짙게 깔렸다.
노루 꼬리 만큼이나 짧았던
겨울의 하루 해가 어느새 많이 길어졌음을 느꼈다.
저녁 6시였는데도 그다지 어둡지 않다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왜냐하면 어둠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 때문에
알바하러 가서 퇴근할 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점점 어둠이 없는 퇴근시간(오후 5시30분)이 된다는것이 좋았다.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어둠에 대한 무언의 스트레스가
순조롭게 풀린다는 것도 자연의 이치였기에 고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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