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장마비가 휩쓸고 간 텃밭은

nami2 2023. 7. 19. 22:42

지난밤에는 5분 간격으로 날아드는 긴박한 문자 메세지가

사람의 마음을 꽤나 긴장 시켜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전쟁 났을 때의 상황이 이런 것인가 엉뚱한 상상도 해봤다.

집주호우로 인한 산사태 발생, 해안 산책로 통제, 하천변 출입금지
지하차도 통제...등등, 문자 메세지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천둥번개와 함께 쏟아붓는 빗줄기는 세상을 깡그리채 수몰 시킬 것 같았지만
새벽으로 가면서 창밖에서 매미소리가 들려왔고
어느새 빗줄기는 조용해졌다는것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던 밤이었다.

그렇게 많은 비가 쏟아졌던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이었건만
오늘은 언제 비가 내렸었나 할 정도로 날씨는 그다지 맑음은 아니었지만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꽤나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텃밭이 신경쓰여서 나가봤더니
앞으로 가을 채소를 심기 전에는

거의  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기가막힌 포기를 하면서도
손놀림은 이미 복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쓴웃음이 나왔다.

 

몇번씩 침수 되었던 여름텃밭은
거의 포기...그리고  왕성한 성장으로 짜증스런 잡초들 
그리고 엉망진창의 밭 꼬라지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꽃이 피고 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물폭탄으로 세상이 잠기거나  말거나
제 할일은 꼭 하고야 말겠다는... 여름에 피는 꽃들은
어느 누구도 말릴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 것 같아서 그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텃밭 한켠에 꽃을 보려고 심어놨던 더덕이
점점 예쁜 꽃을 피워대기 시작했다.
더덕꽃이 피는 계절인듯
들판의 텃밭마다 더덕꽃은 앞다툼 하듯, 피고 있었다.

진짜 더덕꽃이 참 예쁘게 피는 계절은
장마철이 아닌가 할 정도로
비내리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 처럼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더덕꽃의  꽃말은  '성실, 감사'라고 한다.

텃밭에 심어놓은  '곤드레'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몇날 며칠 동안 내렸던

무자비한 물폭탄은 아무 것도 아닌듯  참 예쁘게 피고 있었다.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초의 '고려엉겅퀴'라는 생물학적 명칭이
곤드레의 진짜 이름이라고 한다.

곤드레나물의 꽃은
엉겅퀴 꽃 처럼 생겼으며  어린순은 채취해서 나물로 먹는다는데
내 입맛에는 곤드레 나물이 너무 맛이 없어서
텃밭에서는 오롯이 꽃으로 가꾸는 야생화였다.

 

비를 흠씬 맞고 서있는 예쁜꽃은 '동부콩'꽃이다.
동부콩은 인도와 중동이 원산지인 한해살이인데
동부콩꽃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고 한다.

         부지깽이나물꽃(을릉도 취)

그나마 빗속에서도 예쁘게 자라던

쌈채소  '치커리'가 흔적없이 거의 사라졌다.
그이유는
비가 너무 많이 내리니까
산 속에 있던 고라니가 들판으로 내려와서
쌈채소와 고구마줄기를  몽땅 먹었다고 하는데
우리 텃밭도 예외는 아니었다.
뛰는 놈위에 나는 놈...
물폭탄이 밭을 엉망으로  해놓으니까
그나마 남아있던 채소들을 고라니가 몽땅 먹어치웠다는...

빗물 속에서 버티던  쌈채소 양상추들도
아삭아삭 맛있는 것은
고라니가 몽땅 먹어 치워서 겉잎만 남아 있었다.
고라니  출근 시간은 새벽 4시쯤이라고 하니까
앞으로도, 내가 먹을 것은 없을 것 같아서
조만간에  몽땅 뽑아버릴 예정이다.

나라는 인간은  
짐승인 고라니 먹거리를 재배 할 정도로
너그러운 마음씨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메모해본다.

4월에  씨를 뿌린 당근은 7월이 수확기인데
비가 너무 내려서 몽땅 썩어 있었다.
단 한개도 수확이 안될 것은 뻔한 일이기에
뽑아버릴 일 거리만 남아있다.

지난번 양파와 감자를 캔 밭은
점점 풀밭이 되어가고 있다.
뽑아도 뽑아도 감당 안되는 풀밭이다.

텃밭에서 요즘 가장 예쁜 채소는 들깻잎이다
20일 전에 모종을 심어놨더니
깻잎을 따먹을  만큼 잘 자라고 있었다.

그동안 내린 빗물은 깻잎에게는 자양분이 된듯 했다.

 

부추 역시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자라주어서
비 내리는 날에

부추전 부쳐먹기 딱 좋을 만큼 부드러운 모습이다.

이곳도 그 지긋지긋한 빗물 때문에 덕을 보는 것 같았다.

 

텃밭에 심어놓은  나팔꽃도 올해 첫 꽃을 피웠다.

텃밭가에 방아(배초향)꽃이 제법 피고 있는데
오랫만에 비가 내리지 않았던 날이라서인지
호랑나비를 비롯해서 온갖 나비들이 꽃을 찾아서 날아드는 꼴이란...
나비는 왜 꽃을 찾아 다니는 것인지?
의아해 할 만큼  주변의 나비들이 다 모이는듯 했다.
꿀벌들은 옥수수꽃과 호박꽃과 오이꽃에 모여들고
나비는 참나리꽃과 방아꽃에 모여든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오늘 로서 장마가 끝인가 했더니 주말에 또 비소식이 있었다.
텃밭의 애써 가꾼 토마토는 모두  썩어서 떨어졌고
호박은 예쁘게 매달려 있다가 빗물에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많이 따먹었던 오이도 성장이 멈추고
쌈채소는 몽땅 고라니에게  빼앗기고...
참으로 재미없는 텃밭이 되어버린, 나의 즐거운 놀이터는

가을채소 준비하는 8월 중순 까지는
무용지물로 되어버렸음이 화가 날 만큼이나 아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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