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장마 끝무렵의 씁쓸한 텃밭

nami2 2023. 7. 24. 22:45

이제는 장마가 끝이났는가, 마음을 놓으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5호 태풍 '독수리'가 어디선가 날아온다고 해서
무지막지한 빗줄기는 또다시 이어졌다.
언제까지나 빗속에서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
텃밭을 가꾸지 않았다면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태풍이 오거나 말거나일텐데...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음은 순전히 텃밭 가꾸는 것을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 내 잘못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다.

장마가 끝이나고 있어서 복구만 잘하면 가을채소 심을때 까지
그럭저럭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나의 생각일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비가 내렸다면

당연히 전염병을 대비하는 농약을 쳤어야 했건만
무농약과 유기농 농사라는... 쓸데없는 잘난척에
5월부터 애지중지 정성을 들여서 가꿨던 농작물들이 한순간에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꽈리고추, 오이고추, 미인고추, 토마토, 애플수박...등등
어이없고, 황당하고, 기가막히고, 주저앉고싶은 무기력에
무너져 내리는 씁쓸한 마음과 허탈함의 속앓이를 추스리지 못한채

그냥 멍때림으로 텃밭만 바라본다는 것이 우습기만 했다.

텃밭가에 심어놓은 상사화가 예쁘게 피고 있었다.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렸는데
풀숲을 헤치고  땅위로 올라오는 꽃줄기도 신기했고
계속해서 내리는 빗속에서 꽃을 피운다는 것도 대단해 보였다.

어느 곳에 상사화 뿌리가 있는지 조차  몰랐고
그 많은 풀숲에서 꽃이 핀다는 것이
아무리 봐도 신기하면서 예뻤다.

지금 부터 피기 시작하는 상사화는
아무래도 불볕더위를 즐기려고 나타난
한여름의 요정 같은 꽃 처럼  보여졌다.

늦여름 까지 꽃이 피는 상사화는

초가을에 꽃이 피는 꽃무릇과 바턴 텃치를 할 것 같았다.

 

20포기의 땡초는 장마비가 잠시 중단 되었을때
부랴부랴 전염병 약을 쳤다.
왜냐하면 땡초였기에 고추가 빨갛게 익으면 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따다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약을 쳐야 했던 이유...
그랬더니 전염병이 찾아오지 않고
벌써부터 빨갛게 익어가고 있음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토마토는 빗속에서 터지고,썩었고, 짓물렀고....
따서 버려야 했던 토마토가 엄청 많았다.
그래도 비가 거의 그친 상태인지
터진 토마토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애플토마토와 흑토마토는
가격이 비쌌던 모종을 심었기 때문인지
그다지 터지거나 썩거나 무르지도 않았다.
내년 부터는 애플토마토와 흑토마토 외에는

절대로 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까지 해봤다.

호박은 나에게 좌절을 주지 않고 희망을 주었다.
오이 역시도 지금 까지도 수확이 꾸준했었음이

그런대로 텃밭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빗속에서도 아주 예쁘게 자라고 있는 애호박!!

그런데 영문도 모른채 일요일 오후에

밭에 갔다가 주저앉을 만큼의 큰 충격을 받았다.
엊그제 금요일 오전 까지만 해도
싱싱하고 예뻤던 애플수박들이  이런 몰골이 되었다.

 

애플수박 6개가 아주 예쁘게 수확할 날짜만 손꼽고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날벼락 맞은 셈이었다.
어제 일요일 알바 끝내고 밭에 갔다가  
너무 기가 막혀서 속앓이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밥맛을 잃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이틀만에  이렇게 된다는 것은

급속도로 빨리 전파되는 역병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원인은 역시 빗물
수박이기 때문에 약을 치지 않았던 것이 내 잘못일뿐...
누구도 원망할 수는 없었다.

새까맣게 썩어있는 애플수박 6개중에서
그나마 딱 한개가 멀쩡했기에 줄기를 따서 가슴에 안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가슴에 안고 집으로 갔다.
텃밭에서 집 까지의 거리는 10분...
솔직히 유골함을 가슴에 꼭 안은 것 처럼 마음이 착잡했다.
왜냐하면  이녀석 역시 한켠이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깨끗히 씻은 후 썩은 쪽을 살펴보았다.
5월 부터  얼마나 큰 정성을 들였었는데...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너무 억울했다.

수박을 붙들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듯이 수박을 잘랐더니
이렇게 잘 익어 있었다.
차라리 진작 땄었다면 썩지 않았을 것이지만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세상살이인데...

 

지난 금요일 까지 싱싱했던 6개의 수박들이
불과 이틀만에 몽땅 새까맣게 썩었다는 것이
진짜 믿기지 않았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수박을 잘랐더니 맛도좋고 너무 잘익었다.
그래도 심은지 40일을 기다리다보니
7일 앞두고 몽땅 쓰레기를 만들어버렸다.

장마철 채소들의 역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는 3년전에 고추도
이틀만에 몽땅 썩는 모습을 지켜 본 후
이번이 두번째이다.

그때도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들이 한순간 몽땅 새까매졌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달고 맛있는 애플수박을 그나마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마음은 여전히 씁쓸하기만 했다.
한순간에 정성들인 애플수박 5개가
새까맣게 썩어 있었음은 아무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애기범부채가 더욱 화사하게 피고있는 텃밭은
언뜻 보기에는 평화롭기만 했다.
그러나 밭마다 잡풀은 무성했고

쌈채소는 고라니에게 빼앗겨서 엉망이 되고 있었다.

 

토마토는 터지고 ,무르고, 썩어서
농사 지은 것의 절반 넘게 몽땅 따서 버려야 했으며
꽈리고추와 오이고추, 미인고추도 나무 자체가 죽어서 뽑아버렸고
시들어서 볼품 없는 애플수박 넝쿨은 쳐다보는 것도 씁쓸하기만 했다.

 

그래도 아직은 오이넝쿨과 호박넝쿨이 싱싱하고

들깻잎을 따서 반찬을 해야 하고, 옥수수가 잘 자라고 있으니까
그 이유로 텃밭을 여전히 가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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