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몹시 무더운 여름날의 텃밭

nami2 2023. 7. 28. 22:30

폭염의 여름이 아니면 아침 기상시간은 오전 7시쯤인데
무법의 열대야가 사그러들줄 모르는 요즘은
잠을 자는 것도 꽤나 부자연스러워서
새벽 5시30분이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그리고는 머뭇거릴새도 없이 밖으로 나가면
아파트 후문으로 연결된 들길을 지나서 텃밭으로 발길이 옮겨진다.
집안에서 느껴지는 열기보다는 이른 새벽 들판의 서늘한 공기가
확실하게 잠을 깨우고 정신도 맑게 하기 때문이다.

오전 6시~그리고 오전 8시
요즘 텃밭에서 일을 하는 시간은 딱 2시간이다.
더이상 들판에서도 머물수 없는 폭염의 숨막힘....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하늘은 알고 있겠지만 치사스러워서 묻고싶지는 않았다.

그저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날씨가 뜨거우면 뜨거운대로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가을이 오겠지
마음을 비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이 폭염의 여름은 나혼자만 겪는 것은 아닐 것이니까...

장마가 끝이 난 후 텃밭의 쌈채소들은 모두 사라졌다. 

고라니에게 빼앗기고 남겨진 것들을 추스리게 해놓고선 
조금씩 자라나면 뜯어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더이상 빗물에 수난을 당하지 않고
햇볕을 보니까 기운을 차리고 살아나는 것 같아서 좋아했더니

 

쌈채소가 예쁘게 자라면 매일같이 뜯어 먹어야겠다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쌈채소가 조금씩 푸르스름하게 자라는 것만 골라서
악랄하게 뜯어먹는 고라니 때문에 아침부터 혈압이 올랐다.

어쩌면 그렇게 모질게도 뜯어먹는 것인지

그래서 더이상 고라니의 아침식사를 공급해줄 수 없어서
남아 있는 것들을 한 곳으로 모아 그물망을 씌워놨다.
설마 그물망을 벗겨내고 뜯어먹지는  않을테니까...

어느새 부추밭에서는 하얀꽃이 피기시작했다.
그것도

짜증나는 일이 되는 것이지만  어쩔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추꽃이 피기 시작하면

부드럽지 않고 질겨진다는 것이 세월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

고추 밭에도 하루에 한번씩 가서
붉은고추를 따줘야 한다는 것... 할일이 또하나 생겼다.
미처 따주지 못하면 폭염에 물러지기 때문이다.

장마가 지나가고 폭염이 되니까
토마토는 아주 예쁘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것도 하루에 한번씩 밭에 가서 익은 토마토를 따주지 않으면
까치가 모두 먹어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날짐승, 들짐승 모두가 웬수같은 존재들이다.

 

날씨가 덥거나 말거나

텃밭의 봉숭아꽃은 끊임없이  피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밭에가면  

이슬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모습이 진짜 예뻤다.

빗물에 모두 사라진후

한 포기 남아있는 한련화가 또다시 꽃을 피워줬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았어요...메세지 전달을

꽃을 피워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장마때는 호박 자체가 열리지 않더니
장마 후에는 제법 예쁜 애호박을 볼 수 있었다.

하루에 한개씩 딸 수 있었다.

 

호박 넝쿨은 장마철을 잘 이겨냈고
호박도 제법 딸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
애플수박이 머물렀던 집은 빈집이 되었다.
주렁주렁 6개가 아주 이쁘게 매달려 있었는데
몽땅 썩어버려서 넝쿨을 모두 제거 해놨다.
흔적없는 애플수박의 빈자리는 그냥 허탈해서
왔다간 흔적 조차 만들어 놓기 싫었다.

오이는 여전히 주렁주렁이다.
이젯껏 100개를 훨씬 넘게 땄다.
물을 좋아하는 오이와
물을 싫어 하는 애플수박... 그저 아이러니 할 뿐이다.

뭉뚝한 노각오이는폭염일때 더 잘 열린다고 했다.
이곳저곳 들여다봤더니 제법 많이 매달려 있었다.

서울 여동생집에 택배를 보내기 위해
오늘 아침 수확한 상추는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정도 역시

요즘은 상추가 아닌 금추 였기에 귀하신 몸이 되었다.

재래시장에 노지 상추는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깻잎도 농약을 치지 않아서 구멍은 보이지만

하우스 재배한 깻잎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진한 깻잎 향과 고소한 맛이 먹을만 했다.

 

텃밭에 가면 그냥 마음은 흡족해진다.
어째튼 자연의 횡포에도

자리지킴 잘 한 채소들이 고맙기만 했다.

오늘은 이른 아침에

밭에가서 일을 하지 않고 수확만 해왔다.
서울 여동생 집에 택배 보낼  일이 있어서
함께 넣어 보내기 위해서 였다.
액수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채소들이지만
무농약으로 키운 채소들이니까
마음놓고 먹어도 될 만큼 맛도 좋은 녀석들이다.

 

그동안 수확을 한 후 쪄서 냉동실에 보관한 옥수수와

오이, 가지, 호박, 고추
그리고 오이소박이 김치 담가 놓은 것...등등
아이스박스  상자 틈새에 조금이라도 더 넣어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텃밭에 다녀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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