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9월 끝자락의 텃밭 풍경

nami2 2021. 9. 27. 21:59

추석이 지나고도 자꾸만 비가 내렸기에, 핑계를 대고 텃밭에 나가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는 것 같았다.

게으름인지, 잔꾀인지는 모르나  하루 이틀 자꾸만 미루다보니 텃밭에 나간다는 것이

귀찮아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텃밭에 잔뜩 심어놓은 가을채소들이 눈에 밟히기도 했지만, 그냥 모른체....

그러다가 제정신이 들어서 열흘만에 밭에 나갔더니 , 텃밭은 어안이 벙벙할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채소들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는데, 주인의 발걸음이 뜸했는데도 엄청 자라고 있었다.

지난해는 이맘때 가을 가뭄이 심했다.

그래서 텃밭에 물을 주느라 힘든 시간들이 지속되었지만, 올해는 그렇지가 않았다.

 

8월15일 이후, 시도때도 없이 내리는 비는, 9월 끝자락에도 여전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았다.

한밤중에도 비가 내렸고, 아침에도 내리고, 한낮에도 내리고, 햇볕이 맑았다가도 비는 내렸다.

햇볕이 있는데 비가 내리면, 여우가 시집을 가고 호랑이가 장가 간다고 했다.

그렇게 비가 내릴때도 있고, 하루라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심심해서 내리는 안개비도 실실 내렸다.

인간이 시간을 맞춰서 소변을 보듯이, 생리현상이 아닐까 할 정도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랬다.

덕분에 텃밭은 온갖 잡풀이 극성이고

아울러 채소들도 잘자라다 못해  콩나물 처럼 웃자랐고, 꽃도 지천으로 예쁘게 피고 있었다.

 

오랫만에  나갔더니 한그루의 녹차나무에서 예쁘게 차나무 꽃이 사람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까지는 꽃피울 생각을 하지 않던, 녹차나무꽃이 노랗게 다닥다닥 꽃이 피었다.

 

날씨가 무더웠던 여름날에는 가지가 많이 달리지도 않았건만

비가 내리는 날이 많다보니 가지가 제법 많이 매달려 있었다.

찬바람을 맞은 가을 가지는 단맛이 난다고 한다는데, 맛이 어떤가  기대를 해본다.

 

7월에 씨를 뿌린 당근과

8월에 두번씩이나 씨를 뿌릴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려서 훼방을 놓더니

이제는 날씨가 적당하게 선선하면서 비가 내리니까

잡초가 잘자라듯이 당근도 제법 무성해졌다.

수확기가 되는 11월 말쯤에는 들쑥 날쑥 당근의 모양이 엉망이 될 것 같다.

 

9월 3일에 배추 모종을 심었다.

거의 한달만에 배추는 이렇게 잘 자라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물을 퍼다주느라고 이맘때 고생이 심했는데, 올해는 내 손이 필요 없을 만큼 

하늘에서 비가 시도때도 없이 내려주어서, 이렇게 잘 크고 있다는 것이 그냥 의아했다.

 

텃밭에 심어 놓은 산나물 '쑥부쟁이'가 제철을 맞은듯, 멋진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정작 나물을 채취할때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제대로 뜯어먹지도 못했는데

가을날에는 망할놈의 비 때문에, 꽃씨가 떨어져서 내년에는 텃밭 전체가 쑥부쟁이 나물밭이 될 것 같다.

 

                  부지깽이 나물꽃

 

꽃을 보려고 심어 놓은 '곤드레나물'도  이렇게 많은 꽃을 피워주고 있었다.

딱 한포기였는데,  줄기가 벌어져서 수없이 많은 꽃송이를 만들어 놓았다.

 

                     곤드레나물꽃

 

텃밭가에 잡초라고 생각했던 풀들도 가을이 되니까  종족번식의 습성인지 

풀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련초라는 잡초인데, 깊이 파고들면  몸에 이로운 한방의 효능이 있는 식물이다.

 

텃밭 한켠에 심어놓은 '취나물'밭이 눈이 내린 것 처럼 하얗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는 것이  텃밭 식물들에게는 보약이 된셈이다.

 

돼지감자 꽃도 한몫을 하고 있다.

뽑아내도, 뽑아내도 지겹게 자라더니 ,결국에는 돼지감자도 노란꽃 대열속에 끼어 들었다.

 

                             구기자꽃

 

 앙증맞고 예쁜....그래서 더욱 예쁜 구기자 열매!!

 

호박넝쿨이 끝물인줄 알았더니  이곳저곳에서 노란꽃이 보이면서 호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웬 횡재....!!

이 시기에 애호박을  내 텃밭에서 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횡재였다.

나는 '농사 전문가'가 아닌 초보 엉터리 농사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치도 않았던 호박넝쿨에서 제법 예쁘게 핀 암컷의 호박꽃이 피었다.

잘하면 또하나의 호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풀밭에서 방치를 해놨기에 모두 사라져갔다고 생각했는데

가을 찬바람과 가을비가 호박을 회생시켜 놓았다는 것에 사람을 놀라게 했다.

풀숲에서 살포시 얼굴을 내민 호박도 있었다.

가을날, 9월 끝자락에 애호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일이었는데, 올해는 가을비가 가을 호박을 만들어 냈다는 멋진 이야기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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