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여전히 우중충이고, 가끔씩 빗방울이 흩뿌려지는듯 했지만
그래도 본격적으로 우산을 써야할 만큼 비가 내리지는 않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거센바람이 합류했다.
기온은 10월의 어느날 만큼 선선했었으나
거센바람은 어린채소들의 잎을 모두 찢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또하나의 근심을 만들었다.
바람이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 그리도 싫은 것인지?
하늘이 하고 있는 짓이 참으로 치사하고, 몰인정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엊그제 내린 무지막지한 비에 어린잎이 망가지지 않았는가 점검해봤더니
녹아내린 것도 있었고, 흙탕물을 뒤집어 쓴것도 있었으며, 밭고랑이 빗물에 휩쓸려서 실종이 된 것들도 있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초가을날의 비의 횡포는
그래도 추가로 씨를 뿌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아량을 베푼 흔적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타리무의 새싹이 참 예뻐 보였다.
지난 금요일에 씨를 뿌린후, 월요일에 가봤더니 이렇게 싹이 나왔다.
빗물 덕택을 보게된 것을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인지?
비가 내리지 않았을때는 씨를 뿌리고 일주일이 지나야 겨우 싹이 트일까 말까인데
비가 너무 자주내리다보니, 씨가 발아 되는 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 같았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김장채소 씨뿌리는 것이 늦어졌다고 고민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땅이 축축해져 있어서 싹이 올라오는 시간은 짧았지만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빗줄기에 어린싹들이 상처를 많이 입었다.
부디 더이상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뿐인데, 하늘을 향한 호소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다.
오늘, 9월3일에 배추모종 32포기를 심었다.
땅이 많이 젖어 있어서 물을 주지 않아도 되겠지만
흙에서 살고 있는 벼룩벌레가 배추 잎을 얼마나 뜯어 먹을런지, 또하나의 고민이 늘어났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왜 텃밭을 한다고 해놓고서 늘 근심 걱정에 사는 것인지? 그냥 쓴웃음뿐이다.
텃밭 한켠에 심어놓은 한포기의 방아가 이렇게 큰나무가 되어서 보라빛 꽃을 예쁘게 피우고 있다.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계절 마중은 변함없이 하는 텃밭채소들이다.
방아 향기는 싫지만
보랏빛 꽃이 예뻐서 심어놓은 방아(배초향)는 잎을 따먹는 채소가 아니라 꽃나무 자격으로 함께 한다.
텃밭의 이곳 저곳에 씨를 뿌려놓은 과꽃이 한몫을 톡톡히 한다.
먹거리가 되어주는 채소들은 빗물에 모두 망가져 가고 있었지만, 꽃들은 멀쩡했다.
모진 비바람에도 강인함을 타고난 근성 때문인가
과꽃 옆에 있는 들깨잎은 벌레가 먹고, 빗물에 쓰러지기도 하는데
꽃들은 벌레 먹을 일도 없고, 빗물에 쓰러질 일도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절대로 꽃을 피우지 않는 '털달개비'는
봄이 되면 텃밭으로 나갔다가, 겨울 초입에 집으로 돌아가는 녀석이다.
햇볕이 드는 날 보다, 비가 내리는 날이 더 많은 여름 끝자락이었는데, 고맙게도 꽃을 피워주었다.
아파트에서 곱게 자라다가 들판으로 나가면 적응을 못할줄 알았건만....
어느새 들꽃이 되어가고 있는 털달개비꽃이 예쁘기만 하다.
나도샤프란의 하얀꽃이 빗물 덕을 톡톡히 본 녀석이다.
날씨가 가물었을때는 꽃이 피기는 커녕, 줄기도 모두 메말라 갔었다.
그런데 비내리는 날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식물도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하얀꽃이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늘어날 정도로 텃밭 한켠은 온통 나도샤프란꽃밭이 되었다.
시도때도없이 내리는 빗물에, 꽃들은 피고지고 하면서도, 절반은 망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채소들 처럼, 벌레 먹은 것도 없고, 빗물에 지쳐서 죽어가는 것도 없고....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으로 가을을 마중하는 모습들이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내린 빗속에서도
더욱 싱싱하고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예쁜 녀석들을 보면서
봄에 꽃씨를 뿌리고, 풀을 뽑아주고, 가뭄이 들었을때 물을 퍼다주면서 정성을 들인 보람이
헛수고가 아니었음이 그냥 고맙기만 했다.
'텃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르름이 가득한 가을 텃밭 (0) | 2021.10.15 |
---|---|
9월 끝자락의 텃밭 풍경 (0) | 2021.09.27 |
장마가 끝난후, 텃밭에서 (0) | 2021.08.27 |
여름끝, 가을시작의 텃밭 (0) | 2021.08.23 |
텃밭에 피고 있는 가을맞이 꽃 (0) | 2021.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