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적막한 겨울숲으로 가는 길

nami2 2023. 12. 8. 22:51

초겨울로 들어서면서 이제는 추워질 일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 하면서 이곳 저곳으로 부지런히 겨울채비겸

볼 일을 보러 다녔건만, 어이없게도 오늘 낮 최고 기온은 21도였다.

분명 초겨울인데, 낮기온이 21도...
들판의 텃밭에서 동치미무를 뽑아내면서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은
차거운 겨울바람이 아니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그냥 바람이었다.
대파 밭에 노랗게 피고 있는 민들레꽃은 한 두 포기가 아니어서
지금은 초겨울이 아니라

이른 봄이었나 잠시잠깐 착각속에 빠지기도 했었다.

민들레꽃, 광대나물꽃 ,개쑥갓, 방가지똥  주름잎, 애기똥풀 꽃들은
모두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인데

너무도 당당하게 초겨울에 꽃을 피우는 모습들이란
겨울을 껑충 건너 뛰어서 봄으로 가는 길목인듯...
어디서 어디까지 겨울채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깊은 산속, 길 끝나는 곳의 적막한 숲속에 다녀오는 것이

게으름이 될까봐  서둘러서 어제 다녀왔는데
계속해서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라면...좀 더 여유스럽게

다녀올 것을 하는 후회가 아쉬움이 되어서 미련을 남겼다.

아마도 더 추워지면 혼자 걷는 이 길도
더욱 서글퍼질 것 같아서  갑작스런 생각으로 마을버스를 탔었다.
마을버스에서 하차후 이곳 까지 산길을 따라 30분
낙엽은 더욱 많이 떨어져서 적막했지만, 호젓함에 그냥 걸었다.

주위를 살펴봤더니 단풍은
이미 바삭거릴 만큼 메말라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적막한 숲길
일년이면 몇번이나 갔었을까
이제는 손가락도 꼽아보지 않은채
생각날 때마다 걷게 되는...
우리집 아저씨가 머무는 숲으로 가는 길이다.

어디선가  맑고 예쁜 새소리는 들리지 않고
딱 딱 딱~ 적막을 깨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두군데가 아닌 여러곳에서...
숲 주변을 둘러보니 딱따구리 녀석들이
곳곳에서 나무를 뚫고  있었다.

심심치 않게 들리는 딱따구리의 나무 뚫는 소리가
겨울 숲에서는  정겨움이 되는 것인가?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숲길 끝나는 곳 쯤에서  예쁜 단풍을 만났다
우리집 아저씨가 머무는 숲속 주변이었다.

이 길은 불광산 시명산 대운산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정말 아무도 없는 숲길이지만 두렵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국보급 겁쟁이가 어느새 강심장~~!!
일년에 몇번씩 혼자 걸었던 숲길에서 단련이 된듯 했다.

자연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숲속의 나무 밑에
뿌려달라고 하던  우리집 아저씨의 마지막 말을 지키다보니
어느새 국보급 겁쟁이가

강심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 숲속에서 인연 맺은 나무들은 여전히 건강했다.

술 한잔을 뿌려주고 싶었지만
평소에 술을 싫어 했던 사람이었기에
나무 밑에는 늘 과자를 남겨놨다.
산새들과 함께 나눠먹으라고...

흔적을 뿌렸던 나무 밑에
예쁜 단풍나무가 꽃이 핀듯 아는체를 했다.
새롭게 자란 어린 단풍나무가
어찌나 예뻤던지,색깔도 너무 고운빛이었다.

숲속에 풀이 많이 우거졌을때는
뭐가 나올까봐 겁이나서 숲으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겨울 숲이라서 곳곳을 그냥 서성거렸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뿌릴 때
바람에 가루가 많이 날렸었기에
어느새 서너평 정도 되는 숲속은
그리움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이곳은 이미 겨울 숲이 된지 오래 전인데
노란 단풍이 또 손짓을 했다.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예쁜 단풍이 남아 있었던  그 숲에는
그래도 내가 다녀갈 때를 생각해서
단풍을 남겨놓은 것 처럼 보여져서 고맙기만 했다.

그냥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왔다 갔다  또 왔다 갔다..
그렇게 20분을 혼자 서성거렸다.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의 단풍도 내게는 소중하게 보여졌다.
지난해 이맘때도 왔다 갔고

또 그 지난해도 이맘때 왔다 갔었지만
흔적이 뿌려진 숲속의 나무들이 겨울을 잘 지내고
늘 건강하기를 바랄뿐이다.

그 숲에서 산꼭대기 암자로 가는 길이다.
가끔씩 암자로 가는 자동차가 없었다면
진짜 더욱 호젓하면서도

더욱 적막한 겨울 숲길이었을 것이다.

근처 암자의 개가 벌써 5년째
그 숲에  다녀오면 마중을 나와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평소에 개라고 하면 어린 강아지도 무서워하는데
옆에 바짝 붙을 정도로 따라 다니는 개가
무서워서 저리가라고 손짓을 하면
꼬리를 흔들면서 입을 오물거렸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신호인지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웠는데
왜 그렇게 바싹 붙어서 쫒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암자앞의 평상에 혼자 앉아서 커피를 마실때는
보디가드 역활을 해주는듯 옆에서 지키고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산길을 걸어나오는데
계속해서 쫒아오는 것이 미안해서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손을 흔들어줬더니
아쉬운 표정의 개가 어디 만큼 까지 서서 배웅을 해줬다.
마음으로는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쩌라고...
그냥 모른체 하기에는 너무 난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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