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정도 시간을 내어서 다녀오려고 했던 서울행은 어쩌다보니 엎어진김에 쉬어가자는 말을 실천하게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조카의 미국 유학으로 인한 가족모임에 참석하고 곧바로 부산행 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때가 때인지라 폭염이 심했고, 5호 태풍 '송다'가 전해주는 비는 찔끔찔끔 내렸어도
가족과 함께라면 어떠한 자연재해에도 발길이 멈출 수 밖에 없었기에, 얼떨결에 3박4일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왔다.
그래도 며칠간만이라도 텃밭이라는 것을 잊고싶었지만....
텃밭이 뭔지, 며칠동안 부재중이었던 텃밭이 궁금해서 이른새벽에 문안인사 여쭈러 갔더니
여름이 한층 더 절정인 텃밭에는 어느새 '상사화'가 피어서 텃밭 주변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텃밭가에 피어 있는 상사화!!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고 늘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상사화의
무성하게 자라던 푸른 잎들은 정말 감쪽 같이 사라진채 꽃대가 불쑥 올라와서 꽃을 피운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텃밭가에 심어놓았던 하얀꽃이 부재중이었던 며칠사이에 꽃을 피웠다.
하얀 '나도샤프란'꽃이다.
꽃이 예뻐서 텃밭을 이전할때도 뿌리째 캐어다가 심었더니 무더운 여름날에 꽃을 피워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도샤프란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7월에서 9월 사이에 꽃이 핀다.
꽃말은 '즐거움, 지나간 행복' 이라고 한다.
수요일에 가지를 따서 서울로 택배 보내고, 목요일 부터 일요일 까지 밭에 나오지 않았는데
가지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어도 ,여전히 늘씬하게 잘 크고 있었다.
고추밭도 놀랠 만큼, 붉은 색깔의 고추가 많아졌다.
고추가 익어가는 8월은 고추밭 고랑마다 사람들이 고추를 따느라 모두 구부린 모습들이다.
이른 새벽 부터 밭고랑에 구부린채 고추를 땄더니 땀범벅이었다.
오락가락, 하루에 한번씩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효자 비 였던 것 같았다.
내가 부재중인데, 하늘에서 알아서 물을 뿌려주었던 탓인지 부추도 예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들깨 모종을 한 후 일부러 물을 주지 않았어도 하늘에서 알아서 찔끔찔끔 비를 내려주니
깻잎을 따다가 양념을 발라놨더니 먹을만 하게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상추도 모종을 끝낸 후, 일부러 물을 주지않았어도 하늘이 알아서 골고루 물을 뿌려서 잘 키워놨다.
오늘 내가 했던 일은
부드러운 상추 뜯어서 삼겹살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본다.
수박 딸 시기를 몰라서 그냥 놔뒀더니, 너무 잘익어서 건드리니까 갈라졌다.
세개를 한꺼번에 수확을 했다.
옥수수 밭가에 심어놓은 봉숭아가 제법 예쁜 색깔로 장식을 했다.
내가 며칠동안 부재중이었지만, 식물들은 여전히 잘 자랐고, 익어갔고 꽃은 예쁘게 피고 있었다.
그까짓 3박4일.....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텃밭 식구들이 고맙기만 했다.
텃밭 주변 울타리에 피어 있는 '하늘타리'꽃을 열흘전에 사진을 찍어놨었다.
열흘 후, 오늘 아침에 하늘타리가 이렇게 주렁주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열흘 전의 하얀 꽃, 열흘 후의 파란 열매가 신기했다.
나물로 먹기 싫어서 꽃이라도 보겠다고 심어놓은 '곤드레'가 수많은 꽃송이를 만들어 놓았다.
산위에서는 고려엉겅퀴라는 꽃이, 텃밭에서는 곤드레꽃이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곤드레 나물이 그다지 맛이 없다는 것, 그래서 뽑아내지 못하고 꽃이라도 보겠다는 생각은 잘한 것인지?
여름이 한층 더 심한 무더위가 되니까 텃밭 주변 풀 숲에서 박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따다가 박나물을 해먹고 싶었지만, 아직은 딸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주섬주섬 텃밭에서 수확해온 것들이 또다시 식탁을 가득 채웠다.
어느덧 가을 냄새가 풍겨오는 듯한 텃밭은
오이는 끝물이고, 고추는 빨갛게 익어가며, 잡초는 끝도 없이 자라는 일거리 많은 텃밭이 되고 있었다.
곧 가을 채소를 심을 준비를 해야 하겠지만
날씨는 무덥고, 태풍은 줄지어서 상륙.... 덕분에 비는 오락가락에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먼저 해야 할 일은 붉게 익어가는 고추를 따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데
태풍으로 인한 잦은 비와 바람 때문에 자칫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오지 않기만을 기대할뿐이다.
잘 키워놓은 고추가
잦은비에 탄저병이 찾아와서, 한순간에 몽땅 무너지는 것을 보았던 지난해의 어처구니 없음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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