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6월 초하룻날인데, 절에 가는 것을 포기 할 만큼 새벽 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벌써 사흘째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모든 신경은 텃밭으로 가있었다.
초하루에 절에 못가면, 초이틀이나 초3일 까지는 통도사 불사리탑에 문을 열어놓기 때문에 미룰수는 있지만
텃밭의 식물들은 3일 정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제멋대로 미치광이가 되어 있을 것 같아서
비옷을 걸쳐입고 비내리는 텃밭으로 무작정 나가보았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것 정도는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텃밭으로 가는 들판에서 보라빛 도라지꽃을 만났다.
도라지꽃이 저렇듯 예쁘게 피는 것을 보니, 확실한 장마철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약효는 백도라지가 더 좋다고 하는데, 꽃은 흰색보다 보라색깔이 더 예쁜 도라지꽃이다.
안개비를 무시했더니
안개비가 옷을 적시고, 모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궂은 비 내리는 날인데
근처 산속에서 뻐꾸기가 처량맞게 울고 있었다.
그래도 도라지꽃들이 비 내리는 날을 분위기 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텃밭 한켠의 복숭아가 제법 예쁜 모습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워서 몇개 땄더니, 단맛이 제법이었다.
맛보다는 멋.... 복숭아의 색깔이 너무 예뻤다.
흠씬 비를 맞은 오이 지지대가 흙위로 올라와서 지지대들이 제멋대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잎사귀들도 빗물에 의해 흰가루병이 생겼고, 어떤 녀석은 죽어가고 있었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오이들이 신나게 매달려 있었는데, 며칠동안 물세례를 맞더니 그냥 기가막혔다.
그나마 노각오이는 꿋꿋하게 매달려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듯 했다.
빗물에 의해 텃밭은 완전 풀밭이 되어 있었다.
애지중지 정성을 들인 '애플수박'이 매달려서 크고 있었다.
어찌나 귀여운지, 사진상으로는 커보이지만, 애플수박의 현재 크기는 골프공 정도였다.
빗속에서도 방울토마토는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싱싱함 그 자체....
따먹어보니 단맛이 있고 싱싱해서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청상추 1포기가 빗물에 배추 만큼 자라고 있었다.
어디서 씨가 날아왔는지,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토마토 밭 한켠에서 커가고 있기에
잎을 따다가 식초 몇방울의 물에 담가놓았다.
흙이 많이 튀어서 소독중이다.
며칠동안 밭에 가지 않았더니, 된장에 찍어먹는 고추를 한소쿠리 땄다.
가지 미인고추, 미인고추, 모닝고추, 아삭이 고추, 오이고추.. 모두 맵지 않은 고추이다.
오늘 부터 뱃속이 시퍼렇게 될 정도로 고추를 먹어치우는 중이다.
세차게 비가 내려서 한기를 느낄 정도였지만
기왕에 밭에 나갔으니 할일을 모두 하자는 속셈으로 꽈리고추를 따고, 강낭콩을 땄고
3차 윗거름을 준다고 , 식물들에게 모두 복합비료를 한줌씩 주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 장마철....
감기몸살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면서 , 허술한 비옷을 입었지만 바람 때문에 비를 맞으며 일을 했다.
강낭콩이 수확 할때를 지나고 있었다.
비 온다고 그냥 방치해두면, 썪을 일만 남아 있어서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콩을 따냈다.
비를 맞으면서 따낸 강낭콩...
그래도 껍질을 모두 까고보니 너무 예쁜 색깔의 콩이었다.
비를 흠뻑 맞은 능소화가 요염하게 보여졌다.
텃밭을 가려면 무조건 커다란 비닐봉지를 가지고 가야 한다.
무엇이든지 꼭 수확물이 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싱싱하고 엄청 매울 것 같은, 청량고추(땡초), 그리고 오이, 호박, 깻잎, 부추....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자라는 것은 풀뿐이고, 지반은 약해져서 지지대 세운 것은 휘청거리고.....
솎아낼 것도 많고, 손봐줘야 할 식물들도 많은데
우선 눈에 보여지는 열매들만 따오면서
휘청거리는 지지대 바로 잡아주는데도 , 3시간 넘게 비를 맞고 일을 해야 했다.
양파와 감자 캔 밭에 거름도 해야하고, 삽질도 해야하고 그리고 내일모레가 7월이니까 당근 씨도 뿌려야 하는데
하늘은 정말 야속하게도 끝도없이 빗물을 쏟아붓는 것 같다.
그러고나면 또다시 태풍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물거품 만들 것이고....
가을이 오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닥쳐올 여름 수난시대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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