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날, 달력은 엄연한 겨울날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곳은 겨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가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이상한 세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들판에는 여전히 봄꽃, 여름꽃, 가을꽃이 뒤죽박죽인데
옷은 따뜻한 겨울옷을 입어야만 견딜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배초향(방아)꽃의 색깔이 너무 곱다는 생각이고, 자꾸만 피어나는 노란 봄꽃은 추운줄도 모르는 것 같다.
텃밭의 계절은 아직 까지는 가을이다.
그러나 한밤중의 기온을 보면,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았지만, 영하와 영상의 중간지점에서 긴장을 하게 만든다.
배추는 얼었다 녹았다하면 더 단맛이 든다고, 뽑지 않지만
무우는 얼었다면 김치 자체가 엉망이 된다고 하니까
새벽 2시쯤에 기온을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앗차 하면 이제껏 농사 잘 지어놓은 무우를 한순간에 쓰레기로 만들어 버릴것 같았다.
컨디션이 좋지않아서 차일피일 엄살을 피우며, 들판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는데
하나 둘 무우를 뽑는 사람이 제법 보여서 ,우리 텃밭도 오늘 무우뽑는 대열에 동참했다.
우선 동치미 무우가 필요했고, 그다음은 깍뚜기, 그리고 저장용 무우...
쑥쑥 잘뽑히는 무우는 그런대로 농사 잘지었다고.....스스로 자화자찬을 했다.
왼쪽은 동치무우, 오른쪽은 깍두기
그리고 잎은 시래기용으로........
며칠전 부터 시름시름 몸이 좋지않아서 ,추운 텃밭에서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버거웠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영하로 내려가서 무우를 얼게하는 것 보다는
옷을 잔뜩 껴입고서라도 무우를 뽑는 것이 잘한짓이 될것 같아서 무우를 뽑았더니
깨끗하게 손질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렸다.
9월2일에 씨를 뿌렸다.
3개월만에 뽑아내는 무우는 먹음직스러웠다.
밑거름만 했을뿐, 가뭄에 물퍼다준 것 외에는 해준것이 없었는데
감사해 할 만큼 무우가 잘자라 주어서 흐뭇함으로 수확을 했다.
텃밭에만 나가면 계절 감각에 헷갈릴때가 있다.
겨울옷에 장갑까지 끼고 밭에가면, 밭에 있는 채소들은 꽃을 피우고 있어서
두꺼운 겨울옷에 겨울 장갑 낀 손이 부그러울때가 있다.
아욱'이 계속 꽃을 피우며, 씨 까지 맺고 있었다.
서리에는 잘견뎌 주어서 잎이 상하지 않고 잘크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영하의 날씨가 되면, 잎이 새까매질까봐 잎을 모두 따왔다.
아욱국을 끓여먹는 것도 어쩌면 마지막이 될줄 모르는 겨울 초입인데....
텃밭의 아욱은 요즘 같은 추운 날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난 6월에 씨를 뿌린 쑥갓이다.
여름에는 지긋지긋하게 비내리는 날이많아서 잘 자라지 못했고
초가을에는 두번의 태풍으로 인해 ,쑥갓이 모두 사라지고 3포기가 남았었다.
그 3포기의 쑥갓이 채소가 아닌 나무가 되었다.
6월에 씨를 뿌렸지만, 온갖 수난을 겪은 탓인지, 10월 부터 제 구실을 하게 되었다.
3포기의 쑥갓이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었는데
가지치기를 하니까 제법 많은 쑥갓을 잘라냈다.
밭에서 쑥갓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쑥갓나무에서 전지하듯...채취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3포기의 쑥갓나무에서 전지해온 쑥갓이 제법 되었다.
이미 된서리는 수없이 맞았지만, 어찌 이리 건강한 모습인것인지?
신통방통이다.
수없이 된서리를 맞고 자란 쑥갓이라서 그런지 향기가 대단했다.
원래는 향기나는 채소는 뭐든지 먹지못하는 괴상한 입맛인데...
쑥갓나물만은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쑥갓두부무침'을 했다.
두부를 넣었기 때문인지 쑥갓나물이 맛이 있었다.
추운날씨였기에 대파가 더욱 싱싱해 보였다.
대파뿌리가 감기에 좋다고 해서 일부러 농약을 주지않고 키우는 대파이다.
텃밭 주변에 애기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다.
색깔이 참 예뻤다.
꽃분홍 꽃잎에 ,노란 꽃술이 잘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겨울,12월에 싱그럽게 핀 장미꽃이 '애기동백꽃' 옆에서는 명함도 못내밀 만큼 볼품이 없었다.
5월의 장미꽃은 그나름대로 화려하고 예뻤는데
계절과 맞지않는 이유 때문인지, 애기동백꽃에게 밀려나는 느낌이다.
애기동백꽃의 화사함에 밀리듯, 겨울에 피는 장미꽃에서 느껴지는 초라함은....
제 철이 아니라는 것에서 소외당한 알수없는 외로움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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