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겨울 초입의 텃밭

nami2 2020. 11. 24. 22:11

 엊그제 내린 비가 가뭄에 콩나듯이 매달려 있던 단풍잎을 모두 떨궈내서 삭막한 겨울이 된줄 알았더니

 그것은 내 생각일뿐...

 동해남부 해안가라는 것이 참으로 어이가 없을 만큼, 겨울속의 봄날을 만들어내는 마법의 계절인듯 했다.

 들판에 있는 텃밭에도 가볼겸, 늦은 오후에 산책을 나갔더니, 곳곳에 피어나는 꽃들에게서 조롱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곳에서는 이른 한파가 찾아와서 겨울옷을 껴입고 출근한다는 뉴스를 보았기에

 나름대로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갔다가 ,한꺼풀씩 벗어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먼저 장갑을 벗고, 목도리를 벗고, 목을 감은 스카프도 벗어내고,그리고 겉옷을 벗어서 들었는데, 땀방울이 맺혔다.

 이런 진풍경이 이곳 해안가 지방이니, 어찌 겨울에 하얀 눈 구경을 할수 있겠는가?

 코스모스꽃도 피어나고 있었고, 국화꽃도 새롭게 피고 있었으며, 장미꽃도 예쁘게 피고

 텃밭에 심어놓은 아욱꽃도 피고 있었으며, 시금치꽃, 갓꽃도 피고 있었다.

 

 양파를 심어놓고, 비가 내리지 않아서 열심히 물을 퍼다주면서도 자꾸만 시드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는데

 풍족하게 내려준 비 덕분에, 이제는 물을 주기 위한 작업은 끝이났다.

 아무리 물을 퍼다 주어도 해갈이 되지않는 채소들이었는데

 하루종일 내렸던 비가, 진짜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김장용으로 심어놓은 '붉은 갓'이 제법 잘 자라주었다.

  짜투리 땅에 재미삼아 심어놓은 것인데, 한몫을 하게 되었다.

 

 가을 가뭄으로 팔이 빠져나갈 만큼의 통증을 느끼며, 물을 퍼다주었는데도 자라지 않던 '상추'가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나의 정성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흠뻑 내려준 가을비 덕택인듯 해서 약간은 심술이 났다.

 

 아무리 물을 퍼다주어도 땅바닥에, 늘어 붙어서 클줄 모르던 '치커리'도

 샐러드용으로 뜯어다 먹어도 될 정도로 크고 있다.

 

 겨울내내 얼지 않는 '케일'은 나의 건강식이다.

 녹즙용....

 

 이른 봄에 캐먹고 남겨놓은 '달래'가  제법 자라고 있었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겨울을 지내면, 또다시 이른봄에 맛있는 달래를 먹을 수 있다.

 

텃밭농사 지으면서 가장 힘든 것이 배추농사이다.

벌레에 시달리고, 진딧물도 그렇고, 칼슘이 부족해서 배추끝이 노랗게 병이들고...

가뭄에 아무리 물을 퍼다주어도, 결구가 되지않는 모습에서 괜한 스트레스가 되었었다.

결구"라는 말은 배추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었다.

배추가 속이 꽉차기위해 오므라드는 현상이라고 한다.

가뭄 해갈에 도움을 주었던, 하루종일 내린 비 덕분에 배추도 제법 결구가 되고 있었다.

자연의 힘이 오묘함은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가뭄에도 그리 큰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던 채소는 '무우'였다.

 밑거름 잘하고, 두번 솎아주고, 물 몇번 주었는데, 무우가 제법 잘 컸다.

 먹음직스런 무우로 거듭났다는 것이 볼수록 고마웠다.

 무우국도 끓이고, 무생채를 하려고 오늘 처음으로 무우 2개를 뽑아왔다.

 

 쑥갓이 자라는 것을 보고 지금이 초겨울인가를 생각했다.

 쑥갓 2포기에서 이렇듯 소담스럽게 크고 있다는것이 볼수록 신기 했다.

 6월에 심어놓은 '쑥갓'이 태풍과 장마라는 큰고비를 몇번씩 넘기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잘 키우면 겨울에도 먹음직스런 쑥갓나물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씨를 뿌리고 나서 두번의 태풍을 겪어냈는데,지금은 제법 자라고 있는 '당근'이다.

 김장때 까지는 몇개의 당근을 수확할 수 있을 것 같고

 또다시 지난해 처럼 겨울을 보내고, 봄에 수확을 해야 할 정도로 자라지 않았다.

 이또한 가뭄탓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봄날에 냉이 한포기가 꽃 핀 것을 6월 까지 뽑지 않았더니, 씨가 퍼져서

 텃밭에 많은 냉이가 자라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밭에, 냉이 한포기가 씨를 퍼트려서  이렇듯 많은 냉이가 자란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주말농장의 밭주인이 논을 밭으로 용도변경 하면서 새흙을 퍼다 붓는... 황무지 같은 땅에서

 일부러 다른곳에서 흰민들레와 노란 민들레를 캐다가 심고, 냉이를 한포기 캐다가 밭에 심었다.

 순전히 씨를 퍼트리기 위함이었다. 

 냉이 한포기에서 꽃이 피면서 엄청 많은 냉이씨가 흩어졌고, 가을에 이렇게 많은 냉이가 자랄줄이야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겨울을 나면, 훌륭한 보양식 나물이 되지 않을까?

 

 가을에 부추꽃이 핀 것에서, 씨를 받으려고 가을중순까지 그대로 놔뒀다가

 꽃대를 모두 베어내니까, 이른봄의 '부추'처럼 예쁘게 올라오고 있었다.

 12월 말 까지는 충분히 뜯어먹을 수 있다는 것이  동해남부 해안가의 특혜인것 같았다.

 

 월동시금치이다.

 10월 중순쯤에 씨를 뿌렸으니까

 겨울에 있는 세번의 제사 상에 훌륭한 나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초, 동초, 유채라고 불리는 채소이다.

 요즘, 제법 뜯어다가 나물도 하고, 겉절이도 해서 먹는다.

 

 마지막인줄 알았던 가지나무에서 또다시 꽃이 피고, 가지가 달렸다.

 마음 약해서 뽑아내지 못한 나도 고집이 있지만

 가지 역시도 고집이 있는 것인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까지 열매를 맺겠다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텃밭 주변을 지키고 있는 억새의 머리결이 하얗게 은발이 되었다.

 들판 한복판의 텃밭이라서 그런지, 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흰 머리결이
 늦은 오후에 석양빛과 어우러져서 더욱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내리는 된서리쯤은 아랑곳 하지 않지만

 혹시 몹쓸 강풍에는 견디기 어려울 것인데, 추운 겨울에도 저 모습을 유지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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