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준비 때문에 바쁘기만 했던, 추석명절 전 후로 일주일 동안 텃밭에 나가지 않았더니
오고가는 주인의 발걸음이 들리지도 않았을, 텃밭에는 온통 가을꽃으로 장식 되어 있었다.
인기척이 없는 텃밭이지만
바람이 다녀갔을것이고, 이슬이 아침마다 촉촉하게 해주었을 것이며
풀벌레소리가 정적을 깨트려 주었을 것이며 , 나비들이 동무가 되었을 것 같은....
그래서 식물들은 훌쩍 자랐고, 꽃들은 제법 예쁜 모습으로 시간을 기다린 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예뻐지는 '곤드레'꽃에게 내자신이 홀딱 반했다고 하면, 뭐라고들 할런지?
별로 곤드레밥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곤드레쌈도 좋아하지 않는 내게
곤드레꽃이 나의마음을 사로잡아 보려는듯,
신기할 만큼 꽃이 예뻐서 자꾸 들여다보는데, 꽃 색깔은 더 예쁘다.
보라빛 쑥부쟁이꽃이 제법 예쁘게 피었다.
봄 부터 열심히 나물을 뜯어먹어서 고마웠건만, 가을에는 꽃으로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추석 전 쯤에는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10월이 지나면서 제법 예쁜 '참취'나물꽃이다.
텃밭 한켠에 부지깽이, 참취, 곤드레, 참나물, 쑥부쟁이, 방풍...등등
나물들을 재미로 심어놨는데 가을에 이렇게 예쁘게 꽃을 피워준다는것이 정말 고마웠다.
텃밭 옆 도랑가에 숱하게 많은 잡풀들 때문에 난생 처음 낫질도 해봤다.
그 많은 잡풀들 중에서 가장 골치아프게 쑥쑥 자라던 것들이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웠다.
고마리'라는 이름도 예쁘고, 꽃도 예쁘지만
여름날에 잡풀이라는 것이 웬수같은 존재였었다.
텃밭에 두번째로 많은 잡풀이 ' 만수국아재비'라는 풀이었는데
가을이 되니까 꽃을 피워주었다.
만수국아재비(청하향초)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태풍에 완전이 망가졌던 가지나무가 정신을 차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렵게 열매를 맺는 것이 기특해서 나무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다.
월동시금치를 심으려고 준비하고 있지만, 마음이 약해서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봄에 인연을 맺었던 채소들은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가을채소를 새롭게 맞이해야 하건만
이 가을에 가지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모듬상추를 심었더니,
여러 모양으로 쑥쑥 크고 있는 상추 모습이 너무 예쁘다.
9월20일쯤 씨를 뿌린 유채(겨울초)이다.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크고 있는 어린모습이 예쁘다.
추석 전후, 일주일 동안 눈인사도 못했던 배추가 어느새 이만큼 크고 있었다.
가을햇살이 그렇게 좋은 영향을 주는지 미처 몰랐다.
심어놓고 물 몇번 준것이 전부인데, 너무 예쁘게 크는 모습이 기특했다.
날씨가 봄날과 비슷한듯, 텃밭에는 제법 봄꽃이 피고 있었다.
냉이도 눈에 띄게 많이 보였고, 민들레도 노랗게 꽃이 피는 모습에서
엊그제 보았던 복사꽃과 벚꽃이 그냥 잘못 핀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8월쯤, 바람에 실려서 어디선가 호박씨가 날아와 싹을 틔웠다.
긴 장마와 몇번의 태풍에 심어놨던 텃밭의 호박들은 모두 썩어서 사라졌는데
8월에 싹을 틔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한심하게 생각하며 뽑아버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호박싹이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더니 결국에는 열매를 맺었다.
설마 늦둥이가 잘되겠나 싶어서 모르척 하려다가, 마음이 약해서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신경을 썼더니
추석이 지난후 밭에 갔더니, 호박이 제법 먹음직스럽게 크고 있었다.
진짜 귀한 호박이다.
늙은 호박들을 따내고 있는 수확의계절에, 애호박이라니....
8월 중순쯤에 싹이 조그맣게 나왔던 호박줄기에서 어찌 이런 녀석이 나왔는지
집으로 따와서 무엇을 해먹어야 맛있게 먹었다고 말할런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우선 호박전을 부쳐먹기로 했다.
애호박이 귀한 계절에 먹어보는 호박전이다.
더구나 올해는 긴장마와 무시무시한 두번의 태풍에, 주변의 밭에 호박이 모두 사라졌다.
어디서 어떻게 씨가 날아왔는지는 몰라도 8월 중순에 호박의 싹이 자라면서
10월초에 호박전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호박넝쿨이 제법 뻗어가고 있었고, 찾아보니 앞으로 몇개의 호박을 더 딸수 있을 것 같았다.
주먹만한 호박이 세개가 매달려 있었다.
텃밭 옆, 논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지는 억새꽃이 가을이 깊어감을 말해주는 듯 하다.
조만간에 들판의 논은 텅빈 논이 되고, 억새꽃의 머리결도 바람에 날려갈 것이지만
그래도 눈앞에 보여지는 풍요로운 10월의 가을은 바라볼수록 예쁜 풍경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