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게도 내렸던 여름비와는 달리 ,가을이 들어서면서 우산을 써본 것은 단 한번뿐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야속하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인지
적당하게 비를 내려 주었더라면, 가을 채소들이 제법 먹음직스러웠을텐데...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언제는 내말을 들어줬는가" 혼자 중얼거려보는 날이 제법 있었다.
억지로 진짜 억지로
힘들게 계곡에서 길어다가 준 물을 먹고 자라는 채소들은 내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
그냥 저냥 잘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비가 내려 주었다면, 한번 정도는 아욱국을 끓여먹었을텐데...
서울 동생집에 택배 보내느라고 딱 한번 잎을 따봤을뿐, 아직 아욱국 맛도 못보았다.
9월 초에 씨를 뿌렸는데, 엊그제 동생집에 택배 보내느라 상추잎을 한번 뜯었을뿐...
내가 먹을 정도는 아직은 아닌것 같았다.
제대로 한소쿠리 뜯게되면, 삼겹살을 구워먹을 것인데, 팔이 아프게 물을 퍼다가 줘도 성장속도가 늦다.
치커리 한번 뜯어 먹고나면, 겨울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
기다리다가 힘빠질 것 같다.
쑥갓에게 물을주면서 중얼거려본다.
언제쯤 우리집 식탁에 오를 것이냐구
겨울이 되기전에 한번쯤은 먹지 않을까, 기다림이 지루하기만 하다.
당근의 뿌리를 뽑아보니까, 쭉뻗은 당근 뿌리가 붉으스름한 것이 제법 예뻤다.
그래도 뿌리채소였기에 느긋하게 시간을 기다려볼 생각이다.
텃밭에 물을 퍼다주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게 하는 녀석이 '겨울초(유채)'이다.
쑥쑥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고 있다.
겉절이, 나물, 그리고 국을 끓여 먹어도 맛있다고 해서 한소쿠리 뜯어봤다.
배추밭에 열심히 물을 퍼다 주다보니 ,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오늘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배추잎 끝이 노랗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지인들이 밭구경 왔다가
병이 생긴 것이라고 하는 사람, 물부족이라고 하는 사람, 원인 모르겠다는 사람 ,영양부족이라고 하는 사람
제 각각 의견을 내놓았다.
사진을 찍어서 농약사에 갔더니, 칼슘 부족이라고 한다.
지난해는 30포기 심어서 2포기 수확을 했고, 재작년에는 30포기 심어서 10포기 수확을 했다.
다시는 배추농사 안짓겠다고 맹서를 해놓고, 올해 또 30포기를 심었다.
그래도 20포기 정도는 수확을 하고 싶어서 별짓을 다해보는데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다.
배추 잎 사이에서 누런벌레도 20마리 잡아내고보니
배추농사 짓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농약사에서 배추 칼슘약과 누런벌레 잡는 약을 사왔다.
채소에게도 칼슘이 필요하다는것 또 한가지를 알게 되었다.
무농약으로 모든 채소를 키우고 싶은데, 배추 만큼은 무농약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배추 한포기에는 진딧물도 끼어서 진딧물 약을 쳐주었다.
예전에는 나비도 예쁘다고 생각했건만, 나비도 텃밭에서는 지긋지긋한 존재이다.
나비가 알을 까놓은 것이 파란벌레라고 하는데, 배추에는 누런벌레, 파란벌레가 많아서
손으로 잡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는듯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어디론가 사라지겠지만, 아직 까지는 나비는 여전히 알을 까는 것 같았다.
잔잔하게 땅위로 올라오는 풀들이 잡초인줄 알았는데
방풍꽃에서 씨가 떨어져서 방풍싹이 자라고 있었다.
겨울을 잘보낸다면, 내년 봄에는 제법 많은 방풍나물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닌지?
텃밭 한켠의 산나물 밭에 제법 많은 꽃이 피고 있었다.
쑥부쟁이, 참나물, 참취, 부지깽이나물의 꽃에서 씨가 떨어진다면
내년 봄에는 제법 많은 산나물을 뜯어먹게 될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텃밭에서 활짝 꽃이 피고 있는 '들국화(산국)'에서 제법 짙은 가을향기가 나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꽃씨가 저렇게 예쁜 꽃을 피운다는 것이 신기했다.
알타리무우를 뽑아낸 밭을 정리 했다.
곧 양파를 심을 예정이다.
무지막지한 태풍이 몇번씩 다녀가면서,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던 고추밭이 한순간에 엉망이 되면서
무엇이라도 심어야만 아까운 고추밭 생각을 잊게 될것인가 생각하다가
기가막힌 심정으로 밭정리를 한후, 알타리무우씨를 뿌린 시기가 8월말이었다.
9월초에 가을무우(동치미)와 배추를 심을 예정이어서, 알타리무우를 심겠다는 생각도 못했었다.
주변의 권유로 심어놨던 알타리무우가 제법 잘자라 주어서, 1차로 알타리김치 2통을 담갔는데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양파 때문에 남아 있는, 잔챙이 무우들을 모두 뽑아냈다.
고추대를 뽑아내고, 양파를 심는 시기 까지
50일 정도의 여유가 있는 밭에서 시간을 허락한, 알타리 무우가 한몫을 제대로 해냈다.
그런데,무우를 뽑으면 김치 담가야 하는 큰 일이 생기기에, 차일피일 미뤘더니
양파를 심어야 하는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와서 어쩔수없이 모두 뽑아냈다.
그리고....
텃밭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서 많은 알타리 무우를 다듬느라 낮시간을 몽땅 소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