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태풍 '마이삭'이 다녀간 텃밭은...

nami2 2020. 9. 3. 22:25

 해마다 한번씩은 꼭 겪어야 하는 태풍이 위력은 올해도 역시 무지막지하다는 것을 실제로 또 겪게 되었다.

 나무의 뿌리가 뽑히고, 간판이 날아다니고, 모든 시설물들이 엿가락처럼 휘어버리는 참담한 현실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새벽에 들이닥친 폭풍우...

 유리창이 부서질 것만 같은 덜컹거림과 건물이 내려앉을 것 같은 흔들림, 그리고 정전이 된 어둠속

 악몽같은 몇시간을 보낸후 ,그래도 텃밭이 걱정되어서 엉망이 된 들길을 걸어서 나가봤더니

 지난밤 들판에서 전쟁영화를 촬영한 것 처럼 들판은 온통 쑥대밭이었고

 완전 초토화된 텃밭에는 기가막힐 만큼의  하얀꽃이 다소곳하게 피어 있었다.

 간밤에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은 청초함에 우선 마음을 가라앉혔다. 

 무언가 위안을 주는 것이 있어서 마음을 다스린후, 바라본 텃밭은 그냥 말문이 막혔다.

 

 아침 일찍 나가면, 노란 오이꽃에 윙윙거리는 벌떼들의 분주함이 정말 보기 좋았는데

 오이넝쿨의 지지대가 완전히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으며

 애지중지 아끼던 노각오이들이 흙속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에 화가났지만,

 속수무책 늘 자연에게 당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제는 숙명처럼 느껴져서 할말을 잊고 말았다.

 

 며칠동안 땀흘려 가면서 김장채소 심을 준비를 했던, 텃밭이 맞는가 할 정도여서

 다시 복구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지만

 자연에 굴복한듯 모두 나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게 되었다.

 

 2말반 정도 물이 들어가 있는 하늘색 물통이 날아가버린 것을 찾아왔고

 이것 저것 담아놓은 농기구통도 날아가버렸기에, 주변의 풀숲을 뒤져서 찾아다 놨다.

 

 그래도 하얗게 꽃이 핀 부추밭은 멀쩡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낮은곳에서 자라는 꽃이나 부추밭은 멀쩡했는데, 어째서 큰나무들은 뿌리째 뽑힌 것인지?

 

 예쁘게 열매를 잘 맺고 있던 가지나무도 엉망이 되었다.

 낙엽 떨어지듯 떨어져나간 가지를 주워 모으는데, 진짜 기가막혔다.

 

  그냥 뽑아버릴수가 없어서 뿌리가 튼튼한 것들은 다시 잘 심어 놓았다.

  아직 늦가을 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았다.

 

 며칠만 있으면 먹음직스런 애호박을 두개나 딸 수 있었는데

 호박 지지대도 역시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다.

 

 그래도 뿌리가 튼튼하니까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쓰러진 오이 지지대를 바로 세웠다.

 

 아무래도  가지와 노각오이는, 이것이 올해 마지막 농사가 되지않을까

 흙이 묻어서 땅에 뒹구는 것들을 모두 주워왔다.

 여름날의 모진 물폭탄에도 살아남았는데, 결국에는 태풍 때문에 끝물이 되는 것 같았다.

 

 가을상추는 다시 심었지만, 들깨잎도 이제는 끝이난듯 했다.

 아직 가을도 오지 않았는데, 들깨농사도 끝이났음에 아쉬움만 남는다.

 

 아직은 감이 익으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어느집 밭가에 심어놓은 감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도로 위에 누워었다.

 

  노랗게 감이 익어가는 계절에는 사진만 찍어도 예쁜 그림이 되는 먹음직스런 감이

  올해는 태풍 때문에 수난을 겪는 것 같았다.

 

 동해남부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겪었던 악몽같은 새벽이 지나간후
 아침 7시의 하늘은 그냥 평온함이었다.
 어쩜 저럴수가 있을까
 전쟁이 핥키고 간 들판에서도, 저렇게 맑은 하늘이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간밤에 태풍으로 인해, 완전히 쑥대밭이 된 들판에서 바라본 하늘은 화가 날큼

 맑고 푸른 하늘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또 다른 태풍이 뒤를 이어서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까, 이제는 완전하게 마음을 비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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