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하고 있는 운조루는 우리나라 고택 중에서
두번째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가 주택 모습을 잘 나타내는
몇 안되는 건축물로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조선 영조 52년(1776년)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것으로 99칸(현존73칸)의 대규모 주택으로서 조선시대의 선비의 품격을
상징한 품자형(品字形)의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양반가이다.
하동을 지나 화개에서 구례쪽으로 섬진강 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토지면 오미리라는 이정표와 함께
우측 들판 멀리 고택이 눈에 띈다.
코스모스가 있어서 더욱 멋스런 고택
운조루의 연못
이곳은 남쪽의 산세가 불의 형세를 하고 있어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운조루는 산과 연못으로 둘러 쌓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 라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고택 입구에 널어 놓은 빨간고추가 가을이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이곳 운조루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운조루의 솟을대문
솟을대문 위를 자세히 바라보면 호랑이뼈를 달아 놓은 것이 보인다.
뼈를 달아 놓는 것은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뜻인데
운조루에 호랑이뼈를 달아 놓은 것은 이 뼈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집을 지은
류의주라는 사람이 호랑이를 잡은 용맹스러움을 일깨우기 위함이라고 한다.
운조루 앞 마당에 있는 중국 소나무
고택을 지키는 운조루 종부님께 여쭤보았더니, 이 집을 지으신 분이 중국 사신으로 갔을때
기념으로 받아온 나무인데,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라고 한다.
운조루(雲鳥樓)라는 택호는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라는 뜻과 함께
구름 위를 나르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운조루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와 함께 내수구(앞도랑), 외수구(섬진강)가 제대로 되어 있는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큰 사랑채와 아랫사랑채 사이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중간문이 있다.
솟을대문을 중간에 두고 길게 이어진 행랑채가 있다.
중간 사랑채(귀래정)
운조루에는 방마다 당호와 별칭이 문 앞에 붙어 있다.
큰사랑채 서쪽에 대청마루가 2칸이 있는데, 원래 이 큰 사랑채 대청 이름이
운조루였다.
큰사랑채 툇마루가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듯....
큰 사랑채 서쪽 끝에는 누마루가 있는데
한가롭게 머문다는 의미를 가진 '족한정'이다.
운조루 라는 택호는 원래 큰사랑채에서 두칸으로 된 누마루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름의 뜻이 좋아서 집 전체를 '운조루'라는 택호를 정해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붉은 감은 고택과 너무 잘 어울린다.
고택의 우물이라고 하니까 그냥 멋스러워 보인다.
이곳은 운조루 처음 건립때 집 터를 잡은 주춧돌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는 도중에
어린아이 머리 크기만한 돌거북이가 출토된 부엌 자리이다.
금귀몰니의 명당을 입증한 돌거북이는 운조루의 가보로 전해 내려왔는데
1898년에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안채 앞 마당에 정갈하게 놓여진 장독대
안채에서 행랑채로 나가는 돌담 밑에 '모시'잎이 자라고 있다.
정말 멋스럽게 보여지는 고택의 '풍경'이 하늘가에서 뎅그렁 소리를 낸다.
가을바람에 아주 작은 소리로 들리는 풍경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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