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꽁꽁 언 땅속에서 냉이 캐던 날

nami2 2022. 1. 19. 21:39

한낮에는 기온이 7도 정도로 따뜻해졌지만, 요즘의 대체적인 기온은 영하였다.

영하의 날씨 덕분에....

제대로 된 겨울 옷을 입을 수 있었고

손수 뜨개질을 해서 선물로 전해 받은, 소중한 털모자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 되는 요즘이다.

 

오랫만에 텃밭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봤더니

사그러진 들국화꽃 덤불속에서 덩그마니 남겨진, 늙은 호박이 눈에 띄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기쁨으로 맞이 했을텐데, 영하의 날씨속에서 꽁꽁 얼어버린 늙은 호박과의 만남은

엄청 서운하고 ,아쉽고, 미안하고,씁쓸했다.

호박 줄기는 아직도 꼿꼿해서 가위로 분리 할 만큼 싱싱하고 단단했지만

호박의 몸통은 영하의 날씨 속에서 꽁꽁 얼어 있어서, 집으로 가져갔더니 금방 흐물거렸기에

다시 텃밭 거름 구덩이로 던져 버리면서의 느껴진 아쉬움은....

그냥  늙은 호박에게 미안함뿐이었다.

제대로 눈여겨보지 못한채, 수확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한 죄책감에 반성문을 써본다.

  

12월초에 씨를 뿌린 시금치가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씨가 발아 되어서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월동용 시금치는 한겨울 눈속에서도 잘 자란다는데....

농사를 지으면서도 늘 신기함뿐이다.

 

예쁘게 자라고 있는 시금치는

아마도 3월쯤에 맛있는 나물과 국 

좋아하는"김밥, 잡채" 재료가 될 것 같아서 퇴비거름을 듬뿍 뿌려주었다.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때 까지도 예쁘게 자라던 상추밭이 초토화 되었다.

1월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추위는...  

예쁘게 자라던 '상추'뿐만 아니라 텃밭의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오늘 농협에서 퇴비거름이 나왔다고, 아파트 이장이 몇포씩 배분을 했다.

텃밭을 하려면 중노동도 감수해야 되는 것이기에, 어쩔수 없이 힘자랑을 했더니 완전 비실비실이다.

 

우리 어머니 말씀이

나의 체력은 젖을 먹지 않고, 우유(소젓)를 먹고 자라서 평생 비실거리는 체질이라고 하셨는데....

평소에 10키로의 쌀포대를 들지 못해서 빌빌거리는 체력이,  20키로의 퇴비  19포대를

10분 거리로 옮겨서 쌓는다는 것이 정말 사람 잡는 일이었다.

 

안간힘을 썼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인정했기에

죽기살기로 20키로의 퇴비 19포대를  10분 거리에 있는 우리 텃밭으로 옮겼다.

오늘은 정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양쪽 팔이 빠져나가는 날이었다.

내일은 아마도 양쪽 팔의 근육이 뭉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 몸살 앓을 준비를 해본다.

 

그래도 누가 보더라도 야물닥지다고 할 만큼, 멋지게  퇴비거름을 옮기고 쌓아서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덮개를 씌워 완전무장을 해놨더니 , 내가 봐도 만족했다.

털모자에 두꺼운 옷을 입고, 작업을 할 만큼 추운 날이었는데....

일하다보니 땀이 흘러내릴 만큼 더웠다는 것이 생각해봐도  꽤 열심히 했던 것 같았다.

 

퇴비거름 1포는 양파 밭에  거름을 주었다.

힘들여서 옮겨온 퇴비가  텃밭 작물에게 도움이 된다면 뭣인들 못하겠는가?

다리가 후들거림도 잠시 잊은채, 양파밭에 거름을 뿌려주었다.

 

텃밭에 냉이는 많은데

땅이 얼어 있었고, 냉이 잎이 얼어서 제대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도 한겨울에 먹어보는 냉이 뿌리의 맛이 일품이기에  냉이 캐는 시도를 해봤다.

 

냉이 잎은 추위에 얼어서 볼품이 없건만, 그 와중에도 냉이에서 꽃을 볼 수 있었다.

냉이꽃이 피는 한겨울날의 냉이캐기.... 쉽지는 않았다.

손가락 한마디 만큼 밑의 땅속은 꽁꽁 얼어 있었다.

호미끝에 부딪히는 땅속의 얼음이 냉이뿌리를 나오지 못하게 했다.

 

한겨울의 별미의 맛은 냉이 뿌리인데

땅속에서  흙이 얼었기에 냉이뿌리가 자꾸만 끊어지니까,  너무 아까워서 포기했다.

겨우 나혼자 먹을 만큼의 냉이를 캤다.

 

냉이 뿌리가 길게 뽑혀나와야 하는데

땅속에서 꽁꽁 얼은 흙 때문에  뿌리가 모두 끊어지다보니

짤막해진 냉이뿌리가 아깝기만 했다.

 

한겨울에 얼어붙은 흙속에서 캐낸 보약 같은 별미인 냉이를 데쳐서 냉이무침을 했다.

 

땡초, 마늘을 다져넣고, 들기름과 국간장으로 우선  조물조물 무친후

마지막으로 매실액 한스푼과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서 마무리 했다.

 

달착지근한 냉이뿌리의 맛은 먹을만 했다.

 

텃밭에서 냉이꽃을 보겠다고, 늦은 봄을 지나 초여름 까지 냉이를 뽑아내지 않았더니

그 씨가 텃밭에 흩어져서, 가을날에 냉이싹을 틔우고, 자라고 해서 겨울을 맞이 했었고 

그래서 냉이 뿌리가 이렇게 굵어졌다.

늘 자연 그대로를 좋아 했었던.....

나와 냉이의 합작품이 아닌가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맛깔스런 냉이의 맛을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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