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잘드는 양지쪽의 매실나무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서 느껴지는 매향은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했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응달쪽의 매실나무에는 봄기운을 느낄만큼의 다닥다닥 좁쌀만한 꽃망울을 보여주었다.
옷속으로 파고드는 음력 정월의 바람은 매섭다고 할 만큼 한기를 느끼게 하건만
들판 곳곳에서는 어느새, 감자 심을 시기가 된듯...바쁜 일손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 이맘때면 우리집 텃밭에도 풀을 뽑고, 거름을 주고, 상추씨를 뿌리고, 완두콩 심을 준비를 하는데...
올해 부터는 텃밭이라는 것에 손을 놓게 되었다.
어느날에 텃밭에 나가보니 밭 가장자리에 붉은 비닐끈이 쳐져있었다.
아직은 텃밭에서 일할 시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밭에 있는 것들을 뜯어먹기 위해 가끔은 나가보는데...
어이없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밭주인이 사전에 통고도 없이, 무턱대고 '경작금지'라는 안내문을 군데군데 비닐끈에 매달아 놓았다.
처음에는 임대비를 받더니, 어느해 부터인가 임대비를 받지않아서 해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린벨트 지역이라는 것과 텃밭지기들이 13명 정도 되니까 어떤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5년동안 농사를 지었는데, 갑작스레 당한일에
갑질아닌 갑질이 이런 것인가 어이가 없어서 며칠동안 속앓이를 했다.
각각 밭고랑마다 11월에 심어놓은 마늘, 양파, 쪽파가 겨울을 이겨내고 한참 잘자라고 있거늘
3월25일 까지 원상복구 해놓지 않으면 , 땅주인이 임의적으로 처분 할 것이라는 문구가 얄밉게 붙어 있었다.
봄이시작되면서 마지막이 될 나의 텃밭의 '봄동'이 먹기에도 아까운 존재가 되었다.
고라니와 싸울일도 없고, 가뭄 걱정, 태풍걱정 하지않아도 되지만
5년을 함께 했던 곳이라서 그냥 서운했다.
밤잠을 못잘 만큼, 밥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 허전하고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나의 땅이 아닌 만큼, 두손 반짝 들어서 항복을 하고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 그냥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한달 정도이면 ,무조건 몽땅 뜯어내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겨울 추위를 이기고, 지금 부터 예쁘게 자라고 있는 채소들인데
내 땅은 아니었지만, 여러명이 함께 농사를 지었던 임대 텃밭인데
땅주인의 막무가내 통보는 많은 사람들이 기를 죽이는 짓인 것 같았다.
제법 맛이 들어가는 시금치
시금치를 뜯어다가 나물을 했더니 달착지근 했다.
설탕을 한숟가락 넣은 것처럼 달착지근한 시금치는 4월까지 뜯어먹을 수 있는데
3월25일이면 시금치도 강제로 뽑아내야 한다.
마늘밭 고랑에서 냉이를 뜯어왔다.
냉이국을 끓이려고 밭에 갔다가 ,재미없는 일을 당하고 보니 냉이국 맛이 엉망이 될 것 같았다.
겨울에도 싱싱하게 잘 자란 근대잎도 몇잎 뜯어다가 냉이국 끓이는데 넣어보려고 했지만
올해 부터 텃밭농사를 지을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냥 맛이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고라니가 맛있게 뜯어먹는 것이 잘하는 짓인것 같아서
그동안 그물망으로 잘 덮어 놓은 것을 벗겨내고 왔다.
겨울을 이겨낸 텃밭의 채소들은 지금 부터 하루가 다르게 잘 클것인데
주말농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텃밭사람들은 모두가 하루아침에 근심덩어리가 생겨났다.
한 두해도 아닌 5년을 넘게, 거의 매달리다싶히 정성을 쏟아낸 텃밭이 없어진다는 것이
왜그렇게 서운하고, 마음이 아프고 스트레스가 되는것인지
다른 곳을 알아보기에는 마음에 상처가 너무 컸었는지, 아직은 아무생각이 없다.
3월 25일까지는 아직은 나의밭이고, 나의 채소들인데, 일손이 잡히지 않아서
그냥 밭가에 서서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돌아오게 된다.
마늘과 대파 ,양파, 쪽파를 대량으로 많이 심은 사람들은 수확시기 까지는 버틸것이라고 하는데...
텃밭을 함게 해왔던 13명의 사람들 마음속도 나처럼 상했을것이라 생각하니 할말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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