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장자리로 둘러쳐진 붉은 끈에 '경작금지'라는 땅주인의 경우없는 경고장이 주눅들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왕 농사를 지어놓은 것이기에 마무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요즘은 시간이 날때마다 텃밭으로 나간다.
갈곳이 없는 세상, 방안에 콕박혀서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 심란스런 세상에서
텃밭에서 얻는 소일거리는 큰 위로가 되는 것인지, 사람들은 날씨가 춥거나 말거나 봄농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끔 꽃샘추위는 있지만, 들판의 따사로운 햇살은 일을 하기에는 충분한 날씨가 되어주었다.
겨울을 지낸 텃밭은 약간의 어설픔은 있었지만, 군데 군데 피어 있는 매화향기 때문에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는듯 했다.
직박구리 녀석이 물을 먹으러 왔다.
어제 내린 비로 물통위에 물이 고여 있었는지, 물을 먹느라 사진을 찍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온갖 텃새들이 날아와서 심심치 않게 해준다.
가장 얄미운 새는 '까치'이고, 가장 예쁜새는 '딱새'이며
그리고 뻐꾸기는 못생겼지만,목소리가 좋아서 예쁘게 봐준다.
곧 옥수수를 심으면 까치녀석들은 옥수수씨를 모두 빼먹기 때문에 들판에서는 미운털이 박혀있다.
쪽파가 제법 자랐다.
텃밭 문제가 심란스러워서 밭에 나가지 않았더니, 어느새 파김치를 담글 만큼 자라고 있었다.
봄이라서인지 시도때도 없이 비가 내렸다.
곧 모두 뽑아서 파김치를 담가야 할 것 같다.
겨울과 봄은 느껴지는 기온이 확연하게 다른가보다.
겨울동안에는 이런모습의 상추를 본적이 없는데,
봄이라는 이유로 하루가 다르게 상추가 먹음직스러워진다.
겨울추위를 잘 이겨낸 '치커리'의 연두빛 색깔에 봄기운이 가득 들어 있었다.
밭가에 쑥이 자라고 있었다.
이른 봄날의 어린쑥은 보약이라고 하는데, 한웅큼 뜯어서 쑥국을 끓였다.
올해는 겨울같지 않은 겨울이었기에, 겨울에도 쑥이 제법 자라서 뜯기 좋을 만큼 되었다.
한번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봄동'인데, 겨울동안에 제법 싱싱하게 자랐다.
겨울내내 밭에서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쌈으로 먹었더니 먹을만했다.
고소하고 달착지근하고....
그런데 모두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꽃대가 올라오면 맛이 떨어진다고 해서 몽땅 뽑기로 했다.
밭 문제가 골치아프게 해서 그동안 한번도 밭에 나가지 않았더니
유채가 김치 담글만하게 크고 있었다.
뽑아내는 것을 서두르지 않으면 ,꽃대가 올라올것 같은 화창한 봄날이 되었다.
살짝 데쳐서 나물을 무쳐 먹어보려고 밭에 갔었는데, 손을 대고보니 모두 뽑기로 했다.
어차피 꽃대가 올라오면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몇평인지 어림짐작으로는 대충 20평 정도 되는 땅을 임대했다.
땅주인은 일년이고, 십년이고, 내가 농사짓기 싫을때 까지 텃밭농사를 지으라고 했다.
초보 농사꾼이 겨우 밭에 재미를 붙일 즈음에서, 지금의 텃밭을 그만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주말농장이라고 팻말이 붙은 땅을 임대했더니 요즘 같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기운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땅에다가 지금의 텃밭에서 이것저것을 옮기려고 하니까 마음이 바빠졌다.
산나물과 부추 그리고 케일, 돌나물은 옮겨야 하고,
상추, 옥수수 ,강낭콩은 씨를 뿌리고, 난생처음 감자도 심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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