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일등공신이 된 텃밭

nami2 2018. 5. 31. 01:10

             이른 봄철, 한참 밭 일을 시작 해야 할 시기에  방치 해놓았던 텃밭이 요즘은 제법 괜찮아졌다.

             집안의 큰 우환으로 인한, 큰일을 치뤄낸 후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텃밭에 나가 무조건 풀만 뽑았더니  어느날 부터는 텃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밭에 거름을 주고, 씨를 뿌리는 것 조차 귀찮아서 매일 같이 풀만 뽑다보니

             차츰 차츰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했다.

             상추, 쑥갓 씨도 뿌리고, 가을철에 씨가 날려서 이곳 저곳 흩어진 들깨 모종도 하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후 이른 봄 부터 예쁘게 자랐지만, 중환자 간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밭에 널부러졌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쪽파가 씨를 만들었기에 그것도 마무리를 했고....

             하려고 드니까 텃밭에서의 할일은 너무도 많았다.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과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듯한 의욕상실이  치유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새삼 가르쳐준듯한  텃밭은 어느새 일등공신이 되고 있었다.

                자꾸만 정신줄이 왔다갔다 하다가,제 정신이 들어서 들여다보니 오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이가 꽃피는줄도 모르고, 매일 같이 밭에서 풀만 뽑고 있었다는게 우스웠다. 

                해마다 이맘때면 오이가 주렁 주렁 매달리는 것이 당연한데

                아무 생각없이 애꿎은 풀만 뽑다보니,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이 올해 만큼은 신기했다.

                     가을에 씨가 날려서 이곳 저곳 흩어져 뿌리를 내린 들깨를 한곳에 모두 집합 시켰더니

                     제법 예쁘게 자라고 있다.

                   미치갱이 처럼 자라는 더덕에게 지지대를 세우고, 줄을 매줬더니 질서가 잡힌듯 했다.

                  올 봄에는  병원에서 우리집 환자 간병하다보니, 제대로 된 돌나물 한번 뜯어먹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니까  예쁜 꽃으로 변했다.

                                                               돌나물꽃

                          2월에 완두콩 심어놓고, 돌보지 않았더니  고라니가 싫컷 먹고

                          겨우 남겨진 나무에서 콩이 예쁘게 달려 있었다.

                          한 두번 정도 콩밥을 해먹으라고  고라니가 남겨 놓은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토마토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토마토가 달려 있는줄도 모르고  매일 같이 풀만 뽑았다는 것이 생각할 수록 우스웠다.

                3월 말쯤에 여주 씨를 잔뜩 심어 놓은것을  깜빡 잊고

                여주 모종을 사다 심었더니, 이곳 저곳에서 여주 새싹이 엄청 나오기 시작 했다.

                그 많은 여주 새싹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스럽다.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라도 살아보겠다고  밭에 채소 씨를 뿌렸더니

                     싹이 돋고, 자라서 요즘은 한줌씩 뜯어다가 입맛을 돋구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여행 떠난 사람이 더 좋아했던  채소들인데,

                     혼자서라도 먹고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뜯어다 먹고 있다는 것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