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마철,변덕이 심한 바닷가

nami2 2024. 7. 17. 22:34

일주일 전에 바닷가에 볼 일이 있어서 갔었을 때는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해무가 가득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그 바닷가의 같은 장소에 갔었을때도 여전히 수평선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하늘과 바다의 구분도 없이 멍텅구리 같은 무채색이 전부였다.
늘 해안가 주변을 시도때도 없이 다녔다고 했었는데
이번 장마철에는 유난히 해무의 장난이 심한듯 했다.

엊그제 해안가로 달려가는 마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보여지는 안개가 자욱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버스에서 내리게 되었다.
아직 목적지 까지 가려면 다섯 정류장을 더 가야 하건만 무엇에 이끌린듯...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 처럼 버스에서 내렸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었다.

 

평소에 생각없이 지나치던 풍경이 그날은 어찌 그리 멋지게 보였었는지?
몽유병 환자가 된 것 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안개 낀 해안가 데크길을
생각없이 그냥 걸었다는 것이 진짜 바보스럽다는 생각도 해봤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해안가 데크 주변의 이런 모습 때문에
다섯 정류장을 더 가야 하건만
나도 모르게 그만 버스에서 내렸다.

 

순간이 지나고나니
내가 바보였었나? 우습기만 했었다.
그래도 안개 낀 풍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해안가 데크 길 언덕에서
내려다 본 선착장 주변도 안개속이었다.

평소에 가깝게 보였던 파란 등대는
희미한 안개속이었다.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하루에 열두번도 더 변덕을 부렸다.

갯바위에서는 낚시꾼들의 모습이 있었으나
바다 건너 산 밑은 안개속이었다.

빨간등대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바다 건너 산 밑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목적지인데...

 

해안가를  25분 동안 걸어가면서
재미있는 풍경을 볼 것 같았다.

가물가물 보이던 파란 등대 뒷쪽의
수평선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열흘도 넘게 계속되었다고 하니
바닷가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데크 길에서 가깝게 보이는 바위 위에
참나리꽃이 자생한다는 것도
볼 수록 신기하기만 했다.

 

참나리는 구근식물인데

어찌 알뿌리가 바위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

참으로 아이러니 했다.

 

참나리꽃의 강인함은
해안가 갯바위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텃밭의 참나리꽃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았을까?
갯바위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참나리에 비하면
우리 텃밭의 참나리는 호강스런 꽃 같았다.

이틀 후
집 주변에서 가까운 곳의 바다를 가봤다.
역시 목적은 걷기운동 때문이다.
등대 뒷쪽으로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동해남부 일출 명소의 한 곳인데
벌써 며칠째 수평선이 사라졌으니
매일 아침, 일출은 꽝이었을 것 같다.

등대가 있으니까 바다일뿐..
수평선도 보이지 않고
하늘과 바다는 완전 무채색으로
더러는 이런 수묵화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가 산책로에는 그래도
주홍빛 꽃이 있어서 조금은 예뻐보였다.

해안가에서 걷기운동을 하기에는
장마철에는 햇볕이 없어서 아주 좋았다.

 

그렇지 않으면 감히 이 뜨거운 여름날에
꿈도 못꿨을 해안 산책이다.

급경사 아래에서 윗쪽을 보면서
사진을 찍어보니
하늘과 맞닿은 참나리가 참 멋져보였다.

척박한 해안가 갯바위 절벽 위에서
참나리가 살아가고 있었다.

 

파도가 휘몰아치면
소금물을 매일 같이 뒤집어 써야 하는데도
꽃들은 화사하고 예뻤다.

언제쯤 하늘과 바다가 예쁜색이 될런지?
무채색의 바닷가를 지키는
여름날의 참나리꽃이 고귀해 보였다.

집 주변에서 배차시간이 25분 되는 일반 버스를 타고

8분쯤 가다가
버스에서 하차 후 해안길을 걸어보는 것도
장마철이니까 가능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그늘이 없는 해안가를 걷는 것은
이 여름날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변덕이 아주 심한 장마철이기에 우산만 있으면

걷기운동은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긴 해안 산책로를 걸어서 마지막 목적지는 역시 용왕단이었다.

용왕단에 올라가서 향 한자루 피워 놓고
마음속으로 중얼 중얼....간절한 염원 한마디
돌아서서 좁다란 갯바위 길을 걸어 내려오며, 하루의 마무리는
근처 해광사의 저녁 예불 종소리가 마음속을 참으로 편안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