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장 남은 달력을 넘기면서 시간의 흐름이 덧없음을 생각했다.
스므살 즈음에는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몇살을 더 얹어서 나이가 많음을 과시했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나이가 정지 되었다고 말을 해버린다.
나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큰소리를 쳐보지만, 새 달력을 벽에 걸어 놓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또다시 새로운 달력을 바꿔 달아야하는 서글픔 속에는 알게 모르게 늙어가는 내 모습이 들어 있었다.
젊음은 자꾸만 쪼그라들고,속절없이 달려만 가는 인생길에서는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를수록
평생을 함께 한 그림자 마져도 나약해지는 것 같다.
숲은 이미 겨울이 되어 가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니 늦게나마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단풍나무가 삭막함을 덜어주고 있다.
낙엽이 쌓인 쓸쓸하고 외로운 길을 따라서 숲길을 걸어본다.
가을 산길에서 만날 수 있는 징그러운 모습의 독이 있는 미물이 겨울 잠을 자러 들어갔기에
물만난 고기처럼 회심의 미소까지 지으며 맘껏 낙엽 쌓인 산길을 걸어본다.
가을 가뭄에 계곡의 물이 말라 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여보지만, 나뭇잎배도 띄워지지 않는 거의 마른 계곡 위에
초겨울의 산바람소리는 흐르는 물소리보다 더 요란하다.
늙고 초췌해진 낙엽 위에 젊음을 과시 하는 것처럼 요염한 자태의 단풍잎이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음속의 알 수없는 허전함을 위로해주는 것 같다.
날씨는 징그럽게 추운데, 푸른 하늘 밑의 감나무는 아직도 평화로운 늦가을이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털모자 까지 뒤집어 쓴채 바라본 '감나무'는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해보인다.
표충사를 다녀오면서 밀양댐을 지나 신불산으로 들어섰다.
경남 양산으로 가려면 어쨌튼 신불산을 넘어 가야만 빨리 갈 수 있다.
산 꼭대기의 날씨는 평지보다 더 추운 법....
신불산에 있는 양산의'에덴벨리'라는 스키장에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석양빛에 비춰지는 신불산의 모습은 아침햇살처럼 찬란함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흙바닥 위에 놓여진 제설작업 기계에서 하얗게 설원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또다른 세상에서 볼 수 있는 ....
있는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신명이 나겠지만
없는 사람들의 겨울은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어깨가 움츠려든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볼수 있었던...
일년동안 한번도 눈이 내리지 않는~ 그래서 일부러 하얀 눈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는 곳에서 스키장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신기해 흔히 하는말 '촌놈처럼..'바라보았다.
메말라버린~ 은발의 헝클어진 머리결도 날아가버린 쓸쓸한~ 바람결에 억새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삭막하게 들리는 산 정상은 너무도 추웠다.
기계와 사람의 손에 만들어진 하얀 공간은 웬지 나와는 겉맞지 않는 낯선 곳이었다.
스키장 주변에도 둘레길이 생겼다.
산그림자가 생긴 영남알프스 자락을 바라보니 십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듯~
추운 초겨울의 산꼭대기는 말 그대로 영하의 날씨이다.
경치를 볼 수 있는 눈만 빼놓고 코,입,손,발 모두 얼어버린 것 같다.
산꼭대기는 겨울의 문턱을 이미 넘어섰는데
산 밑은 아직도 가을이 진행중이다.
달력은 12월이 넘어섰건만,계절은 마지막 가을을 쉽게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차피 떠날것이라면 인연의 끈을 미련없이 놓아야 하는 것도 아름다움의 극치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