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은 맑고 푸르고, 가을바람은 선선했으며, 가을의 냄새는 정겨웠다.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가을이 점점 익어가고 있었다.
집안에 볼일이 있어서 지리산 자락을 헤메던 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산골마을의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은후 식당 뒷쪽의 밤 밭에서
떨어진 밤 껍질 속에 밤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해서 가시에 손이 찔리던지 말던지 밤을 주웠다.
누렇게 익어가는 밤송이가 모두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툭 하고 떨어지 곳을 쳐다보면 밤이 떨어져 있었다.
입을 벌린채 밤송이가 떨어졌는데, 껍질속에는 밤 삼형제가 들어 있었다.
홀로서기 하는 밤도 있었고, 형제가 둘이 들어 앉은 밤도 있었으며
성질 급한 밤은 낙엽 위에 뒹굴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에 가시가 박힐까봐 발로 툭툭 찼었는데
밤송이 속에 들어 있는 밤이 예쁘고 신기해서 손으로 집어다가 모아보았다.
발로 비벼 밤을 까서 하나 둘 주머니 속에 넣다보니 재미가 있어
주변에 떨어져 있는 밤을 다시 주워 모았다.
대진고속도로 산청IC를 나와서 산청에서 함양으로 가는 길이다.
산청에서 '함양군 마천면'으로 가는 길은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길에
코스모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가을이 익어가는 들길은 수채화로 그려진 커다란 가을 풍경화 이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주머니가 모자라서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밤을 꺼내서
씻어보니 제법 벌레 먹은 밤이 있었다.
구멍 속으로 얼굴을 내미는 벌레를 보니 하루 이틀이 지나면 엉망이 될 것 같아서
벌레 먹은 것과 멀쩡한 것을 골라 군밤을 만들기로 했다.
땅에 떨어진 밤이라서 그런지 벌레먹은 것이 많았다.
벌레에게 공짜로 주워온 밤에대한 세금을 바치는 격이 된것인지는 몰라도
처음으로 재미있게 주워 본 밤을 모두 버릴수는 없었다.
군고구마 만드는 솥에 밤 껍질을 약간 벗겨내고 얹었다.
옛날 어린시절에 연탄 불 뚜껑 위에다가 군밤을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가 처럼...
온 집안에 구수한 밤이 구워지는 냄새가 났다.
입으로 먹는 것보다 코로 느껴지는 군밤 냄새는 정말 구수하고 맛있었다.
벌레가 먹은 밤을 빼놓고도 제법 되었다.
오랫만에 주워본 밤을 군밤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
이 가을에 첫번째로 느껴보는 작은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