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해가 저무는 공원길에서

nami2 2023. 12. 28. 22:46

지난주에는 엄청 춥기만 했던 날씨였는데
이번주는 전형적으로 따뜻한 해안가의 날씨로 돌아온 것 처럼...
오늘 한낮의 기온은 영상14도였으며

저녁때 기온도 그다지 춥지 않은 영상 9도였다.

이렇게 저렇게 텃밭에 할일이 있어서 매일같이 나가봤더니
추위에 움츠려 들었던 월동채소들은 생기를 되찾았고
꽁꽁 얼었던 땅도 녹아내려서 계속 질척거렸지만
텃밭을 생각하면 날씨가 포근한 것이 우선 순위 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강추위에 얼어붙었던 꽃들은 날씨가 포근해졌어도  
추위에 상처입은 모습들은

그리 쉽게 아물지 않을 것 처럼 애처로움으로 아쉬움만 남겨주었다.

늘 오후 4시쯤 되면

오늘은 또 어디로 나가서 돌아다녀야 하는가 고민을 해본다.
그냥 따뜻한 방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겠지만
걷기위해 오늘 또 나가야 한다는 것을

머리속의 잠재의식이 자꾸만 서두르니까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면 편안하게 걷기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겨울에는

진짜 갈만한 곳이 모두 마땅치 않았기에 오늘은 공원길이 목표였다.

공원은 군청 옆의 작은 소공원인데

걷기운동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운동장 처럼 잘꾸며놨으나

추운 겨울이라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혼자서 10바퀴 넘게 운동장을 돌다보니 가로등이  하나씩 둘씩 켜졌다.
아무도 없는 공원길이지만 ...
평소에도 혼자 잘노는 아이처럼, 쓸쓸함도 잊은채 걷는 것이 재미있었다.

11월 초 부터 참 예쁘게 꽃이 피었던 애기동백꽃들이
강추위에 흔적 조차 없이 사라졌거나, 후줄근 해졌거나  
모두 퇴색이 된 모습들인데...
이제 또다시 새롭게 꽃 피울 준비를 하는 동백꽃을 공원길에서 만났다.

예쁘게 피던 동백꽃들은  모두 이런 모습으로
퇴색된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웬지 애잔해 보였다.

공원길을 열심히 돌다보니
멀리 나무 숲 사이로  보여지는 풍경속에

물레방아가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쓸쓸하면서도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겨울 해는 노루꼬리 처럼 짧다는 말이 실감났다.
들길을 걸어서, 공원 까지 갔다가
일곱 바퀴 정도 공원길을 걸었는데
벌써 가로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공원길의 가로등 불빛...
바삭거리는 나무사이로
보여지는 가로등 불빛이 멋져보였다.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비춰지는 불빛은
혼자만히 사색할 수 있는
여유로움도 만들어주는듯 했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공원의 벤치...
어느새 가로등에 불이 모두 켜진 시간은
오후 5시 10분이었다.

멀리 길 건너 고기집에  불빛이 훤하기에
집에 갈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공원길의 흙길로 된 오솔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은 조금 멀게 느껴졌지만
10,000보 걸음 숫자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멀리 산 밑에 우리 아파트가 보였다.
저곳 까지 걸어가려면
아마도 해가 꼴딱 넘어가지 않을까
도랑가의 구멍 뚫린 작은 다리가 정겨웠다.

잡초가 무성한채  메말라버린 들길을 걸었다.

 

옛날 통학버스에서 내려 시골마을의
해가 저무는 들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눈 까지 펑펑 쏟아져서 집에 들어갔을 때는
거의 눈사람이 되어 있었던
그 옛날 학창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잡초 무성한 들길을 지나서
이번에는 시골마을로 들어서는 흙길을 걷게 되었다.

 

아스팔트 딱딱한 길 보다
훨씬 편안하고 부드러운 흙길은
요즘 걷기운동 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환영받는 길이라고 하던데...

 

도심 끝자락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생긴 이런 길을 걷는다는 것이
꼭 특혜받은 사람처럼 괜히 우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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