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음력 10월 18일이 지장재일이라서, 천년고찰 불광산 장안사에 들렸다가 암자로 올라갔다.
백련암은 3년전 어느날 부터는 장안사에 갈 때마다 꼭 빼놓지 않고 다니는 고즈넉한 절집이다.
호젓한 산길이 좋아서 생각없이 그냥 걷고 싶을때는 무섭거나 말거나 겁쟁이의 딱지를 떼어버린채
백련암을 지나서 , 원효대사와 인연이 깊은 산꼭대기 천년의 역사를 가진 척판암 까지 오를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에는 백련암 까지만 갔어도 충분 했었기에 만추의 분위기를 즐기면서 혼자 잘 놀고왔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 암자로 가는 길은 조금 멀게 느껴졌지만, 걷다보면 먼곳이라는 생각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사색할 수 있는 호젓한 숲길이 편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길동무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느날인가 부터는 혼밥을 먹어야 했고, 혼자서 차를 마시고, 혼자서 여행을 하기 시작했으며
혼자서 암자를 찾아 다니다보니 적응이 된듯, 혼자라는 것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3년전의 어느날 부터 시작된 홀로서기....
그냥 이럭저럭 살다보면 인생의 끝이 있지않겠나, 편하게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따끈한 차 한잔을 생각나게 하는 낙엽속의 쓸쓸한 의자가 진짜 외로워 보였다.
앞서 갔던 사람은 멀어져 갔고, 뒤를 돌아다보니 아무도 오지 않는 호젓한 산길....
한달에 한번 정도는 꼭 이 길을 걷게 된다.
왜냐하면, 절에 갈때마다
이 길을 걸어서 우리집 아저씨가 계신 적막한 숲속으로 가기 때문이다.
멀리 산중턱에 백련암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부터는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혼자서 걸어 가다보면 괜히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리게 되는 이유는....
웬지 모를 두려움이 머릿속을 쭈삣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주변의 지인들은 혼자서 암자에 다녀왔다고 하면 "간뎅이가 부었냐고" 한다.
간뎅이가 부어 있어도, 가고 싶은 길은 다녀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봄날에 백련암 입구에 아주 예쁜, 하얀꽃이 핀 것을 보았다.
정말 예쁜꽃이었는데....
늦은 가을날에 이렇게 예쁜 열매가 매달려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산사나무열매 였다.
꽃이 없는 늦은 가을날에, 꽃보다 더 예쁜 '산사나무열매'이다.
마가목나무의 단풍과 빨간열매가 예쁘다.
산 속에는 주인 없는 자연이 전해주는 감이 지천이다.
감나무 밑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먹는 그 맛도 괜찮은데, 산이 깊어서 들어갈 수 없다.
백련암 뜰 앞에서 바라본, 산 깊은 곳의 감나무이다.
이것이 진짜 늦가을의 풍경이 아닌가?
혼자서라도 아름다운 자연의 멋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누군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감상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봄날의 백련암 뜰앞은 완전한 꽃동산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꽃동산의 결실이 아름다운 열매로 늦가을을 장식한다는 것이 보기좋았다.
예쁘게 꽃이 피었을때는 어떤 꽃인가 헷갈렸는데, 아그배나무꽃이었음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아그배나무 열매
만추의 계절을 알리는 노란 은행나무의 노란 낙엽 틈새에 코스모스 꽃이 눈에 띈다.
서리도 내렸을 계절이고, 곧 산속에는 눈이 내릴텐데.... 할말이 없다.
봄날, 5월에 꽃이 피는 붉은 병꽃이다.
그냥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암자 요사채 지붕위로 초가을날의 '금계국'이 보였고, '클레마티스'꽃도 덩달아 피어 있었다.
누군가 이 사진만 본다면 초가을날의 사진이겠거니 생각할테지만
이 날은
11월22일(음력 10월 18일지장재일)이었고
공교롭게도 24 절기상으로는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었다.
이녀석은 진짜... 말문이 막혔다.
여름날에 피는 하얀 백합꽃이
만추의 계절에, 암자 뜰앞에 피어 있다는 것이 반가워 해야 할 일인가, 헷갈렸다.
갯국화라는 국화꽃의 잎은 약간 특이하게 생겼다.
일본이 원산지이고, 해안 지역에 주로 자라기 때문에 '갯국화'라고 부른다고 한다.
장안사 담장 너머로 바라보이는 은행나무 맨 꼭대기의 까치집이 신기하게 보여졌다.
노란잎이 떨어져 나간 앙상한 은행나무에서, 겨울내내 까치소리가 요란 할 것 같았다.
한적한 산골동네 어귀의 은행나무가 제법 만추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조금만 날씨가 좋았더라면, 참으로 멋진 풍경이 더 돋보였을텐데....
산골동네에서 혹시 첫눈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추위도 아랑곳 하지않고 길위에 서서 ,40분 정도 마을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가 도착 할때 까지도, 끝내 눈발도 날리지 않은.... 야속한 날씨라는 낙인만 찍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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