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음력으로 정월인데, 날씨는 주책없이 화창한 봄날이 되어서 몸둘바를 모르게 했다.
많은 화분들이 놓여 있는 베란다에 들어온 햇볕도 너무 강렬해서 온실에서 느낄 수 있는 식물냄새가 나는것 같았고...
날씨가 너무 따뜻하다못해 덥다는 느낌을 주었기에, 한꺼풀 벗겨내듯 얇은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들판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꽃눈이 쏟아져 내리듯, 어느새 매실나무 밑에는 하얗게 꽃눈이 쌓여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24절기상 '우수'가 지나지 않았는데
매화의 꽃잎이 꽃눈으로 바뀌어서 땅위로 하얗게 떨어진다는 것은
남쪽 지방이 아닌 곳에서, 꽃소식과 함께 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럭저럭 있다가 2월말이나 3월초에 벚꽃이 피는 것은 아닌가 괜한 걱정이 앞섰다.
열흘전에 군자란의 꽃소식이 있는가 들여다 봤더니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마음이 심란해서 분갈이 조차 해주지 않았던 지난해를 생각해보니, 꽃소식을 기다린다는 자체가
너무 뻔뻔한 것 같았기에 꽃소식이 없다해도, 올해는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비우려고 했었다.
그런데...
베란다의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물을 주면서 들여다봤더니 꽃소식이 아니라 꽃대가 이미 올라와 있었다.
두번째 화분에도 꽃대가 올라왔고
세번째 화분에도 약속이나 한듯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군자란의 분갈이를 하기위해서, 2017년 5월에 우리집 아저씨가 큰화분과 거름을 사왔다.
우리집에서의 시간들이 어느새 15년이 되어서 반려식물이 된 군자란들이었기에
해마다 꽃대가 올라오는 것 부터 시작해서 활짝 꽃이 핀 모습을 보면서
어린아이 바라보듯 흐뭇해 하던 사람이....2018년에 하늘로 떠난 후
군자란은 베란다에서 주인 잃은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해 화분 4개 중에서, 20년이 넘는 군자란이 빈 화분만 남겨놓고, 우리집 아저씨가 계신 곳으로 떠났다.
그 덕분에 더욱 마음이 착잡해져서, 남겨진 3개의 화분들도 분갈이를 해주지 않았기에
올해는 그럭저럭 버티다가 모두 떠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개의 화분 모두가 꽃대를 올려주었다.
너무 고마웠고 예뻤다.
한개의 화분도 아니고, 세개의 화분에서 몽땅 꽃대가 올라오다니....
이녀석은 꽃봉오리를 보여준지, 열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활짝 핀 모습을 볼수 있을런지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다.
우리집 아저씨가 좋아했던 '돈나무'라는 식물이 새싹을 보였다.
지난해는 우리집 아저씨 떠난 빈자리가 너무 상심이 컸었는지
식물들도 모두 비실비실 예측을 할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기력을 찾은듯, 새로운 싹이 올라왔다.
이제는 나와 함께 남은 세월을 살아보자고 무언의 약속을 해봤다.
베란다에 놓여진 많은 식물들은 우리집 아저씨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던 녀석들이다.
집안 가득 화분이 있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사람이었기에
어린아이 다룻듯 함께 살아온 세월들이 모두 15년 이상 된 것들인데...
우리집 아저씨 떠난 빈자리에 ,말없는 침묵과 서러움으로 1년을 훌쩍 지내놓고보니
이제는 모두들 기력을 찾은듯, 꽃을 피우고 새로운 싹을 보여준다.
남은 세월 함께 살아보자고.... 마음으로 약속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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