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이란 세월속에서 가락국의 암자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세월속에서 누군가가 지켜왔고, 복원하고, 새로운 불사를 하였기에
아직도 그자리에 가락국의 암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흘러온 세월에 감사하며 궁금했던
가락국의 암자로서는 마지막으로 해은암을 다녀왔다.
해은암(해은사)에 도착 했을 때는 석양빛이 아름다운 늦은 오후였었다.
포대화상이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는 암자의 첫인상은
가락국의 사찰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숙연한 그 무엇이 있었다.
저녁햇살에 고즈넉한 암자와 천 년이 훨씬 넘는 세월도
황혼에 물들어 더욱 더 고요함이 침묵을 지키게 한다.
용왕을 모신 연못도 꽁꽁 얼어 있었다.
가락고찰 해은사 '불이문'
김수로왕의 아들 거등왕이 어머니(허황후)가 인도에서 올 때 뱃길을 지켜준 바다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해은암에는 일주문이 없기에 불이문으로 들어가본다.
대왕전에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머나먼 뱃길로 아유타국에서 김수로왕께 시집을 오는 허왕후의 일행을 그린 대왕전안의 벽화
가락국이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대왕전'
다른사찰의 대웅전이 이곳에서는 영산전으로 법당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영정 앞에는 허왕후가 망산도 (望山島)에서 가져 왔다는 '봉돌'이라 불리는 영험있는 돌이 있어
사람들에게 토속신앙으로써 남자에게는 재복을,여자에게는 생남을....
절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설화이다.
산신각 입구에 서 있는 바위로써 남근을 상징
영험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와서 기도를 한다.
타고봉
파사의 석탑모양을 본땄다고 하는 적멸보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분산성 (사적 제66호)
김해시 어방동 964번지 분산에는 가락국의 사찰인 해은암이 있으며
산정상에 돌로 띠를 두른듯 쌓은 산성과 마주보이는 앞산 꼭대기에는 '김해 천문대'가 있다.
늦은 오후 해는지고, 어둠이 찾아 오는 산성을 한바퀴 돌아보니 그저 쓸쓸하다는 표현으로 모든것을 대신했다.
이곳에도 봄은 오고 있는듯 좁쌀 알갱이만한 꽃눈이 진달래 나무에 촘촘 박혀 있었다.
곧 이 쓸쓸한 산성 에도 화사한 진달래꽃으로 수를 놓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