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는 , 살아 있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성의표시라고 한다.
그 표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예법 따지면서 꼭 올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리는것~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듯 하다.
일년에 명절제사(차례) 빼놓고는 유일하게 지내는 기제사날이다.
새해가 들어서면서 '시아버님' 제사가 있으며, 일주일이 되는날에 또 '시어머님' 제사가 있고,
보름후엔 설날인 명절제사(차례)가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집 냉장고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내온다.
두식구 중에 유일하게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세차례의 행사를 치루고 나면 추석때 까지 먹어도 남는다.
원래 나는 음식을 많이 먹을수 없는 뱃속을 가졌기에 제사음식을 버리면 죄받는다는 관념때문에
미련맞게, 먹고 ,체하고 또 괜찮아지면 먹고, 체하고 그래도 버리지는 않는다.
쉬엄 쉬엄 추석때까지 먹을 수 밖에..
제사음식을 꺼리는 사람들때문에 다른이는 주지못하고 여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처음에는 제사음식을 할 줄도 모르고,친정에서 아버지 제사만을 참석했던 내가 어느날 부터 시댁어른
제사 준비를 한다는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웠었다.
시댁은 경상도이며, 나의 어머니는 서울 토박이 였기에 원칙은 경상도 상차림을 해야 하는데~
친정 아버지 제사를 모시던 ,나의 어머니에게 어깨너머로 보았던 서울식 상차림으로
생전에 한번도 뵙지못한 시어른들께 음식상을 올리는데, 경상도식과 서울식의 음식과 주변의 이웃들에게
주워 들어서 만드는 음식이라서 나의 제사상 음식은 전국구가 되어버렸다.
제수음식 장을 봐오는 과정도 처음에 우리집 아저씨가 적어준 목록 그것을 무슨 보물인냥 간직하면서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그 메모를 보면서 장을 본다.
그러다가 어느날 부터는 제사음식을 조상님에게는 죄송하지만 나의 입맛에 맞는것으로 변화를 시켰다.
정성을 들여서 준비한 그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사람은 '나밖에'없다보니 결국은
내 친정 어머니식의 서울음식으로 젯상이 변했으나 ,유일하게 경상도(부산)상차림속에 '문어'는 들어간다.
문어가 빠지면 안된다고 하니까...
서울에는 조기가 올라가는데, 경상도 중에서도 특히 부산은 생선이 많이 올라간다.
바닷가라는 특성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생선이 한 보따리다.
커다란 침조기, 민어, 도미, 눈이 큰 빨간 열기 생선을 안좋아하는 내가 그것을 먹어치운다면 다음 추석까지 먹고도
남을 정도이다보니 ~ 현실과 나의 식성과 버려지는 음식에대한 낭비를 감안하야 차려진 젯상이
어느날 살아있는 내위주로 변해버린것에 대해 조상님께 깊이 사죄 할 따름이다.
제수음식을 준비한다는것은그래도 여간 신경쓰이는것이 아니다.
더구나 늦게까지 가게 일을 보고,마트에가서 제수 장을 보는데,늦은 시각이라 떨어진 물건들이 많았다.
아무리 현실에 맞게 제사를지낸다고는 하지만, 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족한면과 서운한점을
조상님께서 아신다면 하는 편하지못한 마음도 갖고 있지만 ~~
그래도 내나름대로 최선을 다함과 정성을 예쁘게 봐 주신다면 하는 바램도 있다.
세월의 흐름에 제사의 형태가 현실성으로 바뀌었지만,조상을 생각하는 근본적인 마음까지는 변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것은 가슴에 담고있다.
내가 죽어 사라진다면 감히 제사음식을 먹는다는것에 꿈조차 꾸워보지 않지만
내가 살아 있는동안의 나의 뿌리에 대한 '섬김'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아마도 계속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