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들어서 가장 춥다고 하는 날에 이상한 바람이 불어서 경주 남산에 있는 칠불암에 가려고 길을 나섰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추위가 너무 심해서 경주 남산 근처에서 방향을 돌려 첨성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첨성대를 직접 보기 위하여 추운날에 찾아 간다는 것은 멀쩡한 정신이 아닌
신체 한부분의 나사가 약간 풀렸을때 하는 행동인 것 같아서 약간은 쑥스러웠다.
그러나 이왕 경주 까지 갔었으니 겨울 나들이 치고는 너무 근사한 곳을 두루 두루 다니고 돌아 왔다.
춥거나 말거나.... 아무튼 겨울바람 한번 멋지게 쐬고 다닌 하루였었다.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보여지는 첨성대의 뒷 곁은 국보급 건축물이라도 쓸쓸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39-1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632~647)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화강석을 가공하여 기단 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의 곡선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장대석을
우물정(井)자형으로 축조하여 정상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다.
정남쪽의 석단에는 밑으로 부터 제13단과 제15단 사이에 네모난 출입구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고
이 출입구 아랫부분 양쪽에는 사다리를 걸쳐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곳을 통해 꼭대기 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의 석조물로서 곡선과 직선이 잘 어우러진 안정감 있는 건축물이다.
경주 동부 사적지대 (사적 제161호)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104-1
이 일대는 동서로는 안압지에서 부터 교동 까지, 남북으로는 월성남쪽의 남천에서 현재 고분공원 앞
첨성로에 이르는 광대한 사적지대이다.
신라 왕경의 중심부 였기 때문에 월성, 안압지, 첨성대, 계림 등의 중요한 사적이 많다.
경주 동부 사적지대
멀리 보이는 산 능선과 왕릉의 높이와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 지역은 경주에서도 신라의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겨울나무 숲이 고즈넉하면서도 멋스러운 경주 '계림(鷄林)'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1번지
이 숲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 때 호공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무가지에 금궤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이름을 알지라 하고
원래는 시림,구림이라고 하던 이 숲을 계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디어 왔는지 가슴이 숙연하다.
경주 계림 숲은 원래는 시림(始林)이라 하며 신라초 부터 있었던 숲으로 은행나무,벚나무,
물푸레나무, 느티나무 따위의 고목나무로 아름다운 숲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앙상한 고목의 애잔함과 왕릉의 고요함이 잘 어우러진 세월 지킴이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석빙고 가는 길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과 부용화 꽃길이었던 석빙고 가는 길이 너무 쓸쓸한 겨울풍경이다.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나무의 멋스러움에....
석빙고(보물 제66호)
경주시 인왕동 449-1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 두었던 창고로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조선 영조14년(1738)에 조명겸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것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이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석빙고 내부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석빙고의 지붕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
신라 초기의 궁궐 터 였던 요석궁 자리에 위치한 경주최씨 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 되어 있다.
최씨 고택은 경주 최씨 종가로 300년동안 12대를 이은 만석지기와 9대에 걸쳐 진사가 나오는 가문이라 한다.
경주 최씨 고택의 중문
경주 최씨 고택의 안채
경주 최씨 고택은 원래는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에
불에 타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고택에 잘 어울리는 나목(裸木)
경주 최씨 고택을 지키고 있는 꼬맹이
경주 최씨 고택의 육연(자신을 지키는 지침)
1)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2) 남에게 온화하게 대한다.
3)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낸다. 4)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 한다.
5) 뜻을 얻었을 때는 대담하게 행동한다. 6)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경주 최씨 고택의 사당
경주최씨 고택의 육훈(집안을 다스리는 지침)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마라 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4) 과객은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6)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 옷을 입혀라.
경주 교동 법주 만드는곳
경주 교동 법주는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제86호)로 지정된 국주(國酎)중의 하나이다.
특히 전통 방법으로 제조하는 경주 교동법주는 대량 생산되는 경주 법주와는 맛이 다르다.
교동 마을의 350년이 넘는 집에서 200년이 넘는다는 우물에서 기른 샘물로만 빚은 ㅅ술이라고 한다.
경주 교동 법주의 안채
경주 교동 법주는 경주 교동의 최부자댁에 전해오는 비주로 조선 숙종 때 궁중에서 음식을 관장하던
관직에 있던 최국선이 고향으로 돌아와 최초로 빚은 것으로 궁중에서 유래된 술이다.
1986년 중요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최씨 가문의 가양주로, 배영신 할머니가 제조비법을 전승해
지금은 아들 최경씨가 2대 인간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아 술을 빚고 있다.
누룩은 띄우고 밑술과 덧술을 만든후 숙성 까지 100일의 손길과 정성이 필요해 백일주로 불리기도 하는
교동법주는 1일 생산량이 900ml들이 20병 내외로 1人이 구매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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