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산사의 풍경

따뜻한 겨울날의 암자순례

nami2 2023. 2. 9. 22:41

다른지방에서는 아직도 봄의기운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지만
이곳은 이른 봄날이라고 할 만큼....

꽃망울들이 자꾸만 예뻐지면서, 마음을 싱숭생숭 하게 했다.

 

혼자보기 아까워서 예쁘게 꽃이 피는 매화 사진을  카톡으로 전했더니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지인들은
3월 정도쯤이나 느낄수 있다는 봄소식이라고 부러워들 하지만
겨울이 엄청 짧은 이곳으로서는

즐거운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가늠이 안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째튼 봄날같은 포근함은 이대로
겨울 끝, 봄의 시작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보는데...
언제 또다시 꽃샘추위가 다가올지는 예측도 못하면서
그래도 일단 봄날처럼 따뜻한 겨울이라는 것에
부담없이 산속을 헤매도 괜찮을 것 같았기에 암자순례를 하려고 산으로 갔다.

금정산 범어사  산내암자 '내원암'이다.

이른 봄날 같은 겨울날에 암자순례를 한 첫번째 이유는
엊그제가  정월대보름날이었기에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발길 닿는대로 가고싶었고
두번째 이유는 암자 뜰앞의 낙엽속에서 노란 복수초를 찾기 위함이었다.

겨울 끝자락이지만
남부지방에서는 이른 봄날이었기에
복수초의 화신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이곳 저곳의 산 중턱을 넘나들면서 발품을 팔았다.

범어서 산내암자 '내원암' 산신각 둘레길에서 바라본

금정산 계명봉이 유혹을 하는 것 같았다.
산 중턱의 계명암 뒷뜰에  복수초가  피어 있을 것이라고...

범어사 산내암자 '청련암'으로 갔다.

청련암은 극락왕생을 비는 지장기도 도량이라서인지

마침 찾아갔을때는 법당에서 49재를 올리는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청련암 뜰앞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청련암 뜰앞의 화단가 어디에도 노란 색깔의 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동백나무에도 아직은 꽃봉오리만 다닥다닥 있을뿐
활짝 핀 꽃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주변을  지나던 스님께서
뒷쪽에  하얀꽃이 피었다고 가르쳐 주시길래  가봤더니...

백매화가 예쁘게 피고 있었다.

그동안 날씨가 많이 추웠었는데
그래도 매향이 퍼져서, 암자 경내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청련암 경내에 핀 백매화

청련암 삼성각 앞 화단가에도
복수초 흔적은 커녕  아무런 꽃소식이 없었다.

이 주변은 사계절 내내 꽃으로 장식된 꽃밭이었는데...

 

약간 몸이 나른하고  지치는 것 같아서

급경사의 산 길을  올라가야 하는가 많이 망설여졌지만
그 암자에 꼭 복수초가 있을 것 같다는... 

무언가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결국에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려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은 급경사의 오르막...
한참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가파른 곳을  쉼없이 올라왔다는 것이 대견했다.

드디어 계명암 일주문이 보였다.
범어사 산내암자 중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급경사였지만
해수관음보살입상이 계시는 관음기도 도량이었기에

암자를 오르는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계명암 뒷뜰의 꽃이 있었던  화단가의 낙엽속을 들여다보니
3월쯤에 꽃이 필것 같은 야생화는 많았으나

복수초는 야속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 역시 헛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법당의 관세음보살님을 뵈었다.

 

낙엽을 이불삼아  파란 싹이 보이는 것도 신기했지만

꽃은 나중에도 꼭 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눈인사를 한 후 돌아섰다.

계명암 담장가에서 바라본, 금정산 정상 고당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산수유 노란 꽃봉오리가

곧 예쁜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이
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산을 내려간 후 다시 발길을 돌려서
금정산성 북문쪽으로 향했다.

범어사 산내암자 '금강암'으로  올라갔으나
그냥 헛탕을 친 후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함을 기원했다.

마지막으로 '대성암'에서는 꼭 복수초를 볼수 있게 해달라고...

대성암 담장옆에는 어느새 청매화가 피었다가 사그러들고 있었다.
일찍 매화가 피었으니까, 혹시나  복수초도 기대를 해봤다.

대성암  마당가에 세워진 간판에서 좋은 글이 눈에 띄었다.

 

내 마음이 부처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네


글을 읽고, 경내 법당을 향해 합장을 한 후
돌아서서  대문을 나오려고 하는데...
대문 옆 화단가에서, 무언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복수초였다.
비록 피어나고 있는 꽃봉오리 였지만
복수초였음에 .....

나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무조건 감사했다.

며칠 늦게 갔었더라면 제법 예쁜 복수초를 보았을텐데

아쉽기만 했었다.

 

복수초 꽃봉오리가 보였기에,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니
진짜 노란 복수초가 꽃의 화신이 된듯
내 눈 앞에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진짜 혼자보기 아까울 만큼의 설레임이었다.
선방에 계신 스님들께 복수초 소식을 알려드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한참동안 노란 '복수초' 꽃 앞에서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주변의 낙엽도 치워주고, 또 들여다보며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짓을 했다는 것이 우습기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