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동안 흠뻑 비를 맞은 채소들의 모습은 정말 싱그러웠다.
계절적으로는 곧 추위가 닥쳐올 겨울 문턱이지만, 꼭 이른 봄인 것 처럼 착각할 만큼 채소들이 잘 크고 있었다.
텃밭 이곳저곳에서 노란 봄꽃이 피고, 냉이는 점점 먹음직스러워지는데
윤기가 흐르는 채소들의 모습 앞에서는 곧 닥쳐올 추위를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하루 하루를 시한부 인생을 바라보듯, 문안인사 여쭙고 기온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원할뿐이다.
냉이 같은 경우에는 영하로 기온이 떨어져도 꿋꿋하게 뿌리를 더욱 굵게 만들어가지만
상추 종류는 밤새 '안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괜한 걱정으로 머리속이 복잡해지려고 한다.
겨울초(유채)는 지금 한창 맛이 있었다.
뜯어서 나물로 먹고, 겉절이도 해먹고, 쌈도 싸먹고, 국도 끓여먹는 월동채소라서 걱정은 하지않는다.
영하 10도 정도 내려가야 약간 타격이 있을뿐
이곳 동해남부 해안가는 웬만해서 영하5도 이하는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을 것이라 믿어본다.
시금치도 역시 월동용이기 때문에 한겨울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더욱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완전하게 얼어붙었어도 햇볕이 좋으면, 얼음이 녹아서 뜯어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있다.
시금치와 유채(겨울초)는 고라니도 먹지 않는, 겨울채소라는 것이 안심된다.
영하5도 까지는 성장이 멈추지 않는 케일이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잎이 더욱 두꺼워지면서 벌레가 없다는 것이 좋았다.
봄에 심는 케일은 벌레와 나눠먹어야 할 정도로 파란벌레가 다닥다닥 붙어서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가을에 씨를 뿌린 케일은 맘놓고 샐러드용으로 사용하고, 잎이 손바닥만해지면 살짝 데쳐서 쌈도 싸먹지만
영하 5도가 넘어가면,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게된다.
조선상추, 오크, 청로메인, 적로메인
정말 달달한맛이 고소해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쌈채소이다.
무조건 영하로 내려가면 견디지 못하고, 잎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안타깝다.
다른지방에서는 강추위가 찾아왔다고 하지만, 이곳은 아직이다.
무조건 밤기온이 영하 까지는 내려가지 않기를 바랄뿐인데, 그래도 믿을 수 없는 불안이 마음을 건드린다.
혹시 영하로 내려갈까봐 며칠에 한번씩은 상추를 뜯어서 이곳 저곳에 나눔을 한다.
자주 내리는 겨울비와 포근한 날씨가 상추의 성장을 도와주는데
갑자기 밤새 기온이 뚝 떨어져서 기가막힌 상황을 보게될까봐 웬만한 크기의 상추는 무조건 뜯어오게 된다.
나혼자 먹지 못하는, 윤기 흐르는 쌈채소는 비닐팩에 담겨져서 이곳저곳으로 나눔한다.
여동생이 사는 서울을 비롯해서 이곳 저곳으로 택배가 가고, 지인들에게는 선물로 간다.
빗물만 먹고 자란 무공해 채소라는 이름으로....
치커리도 추위에 강인한 채소인데, 그래도 밤새 어찌 될까봐 늘 조바심이다.
텃밭에 심어놓은 쌈채소 덕분에 야채샐러드는 뱃속에서 뭐라고 하든말든 매일 먹게된다.
그러다보니 생선은 너무 비린내가 나는것 같아서 못먹고, 육류는 느끼해서 못먹고
어느날 부터인가 우리집 식탁은 사찰음식이 되어가는듯 했다.
햇김, 물미역을 비롯한 겨울에 나오는 해조류가 제철을 만난듯 쏟아져나오는 해안가 재래시장과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만든 음식들을 먹다보니, 다이어트는 기본이라서 몸도 점점 더 가벼워지는듯 했다.
지난 주말에 갑자기 추워진다고 해서 무우를 뽑았다.
동치미 2통을 담아서 한통은 서울로 택배 보내고, 총각김치를 2통 담았는데 무우가 엄청 많이 남았다.
무우 넣고 끓이는 오징어국, 무우생채, 무우나물...등등
지난해는 무우를 텃밭에 묻었는데, 올해는 무우를 신문지에서 싸서 아이스박스에 보관했다.
텃밭에는 아직 덜 자란 '청갓'도 남아 있고, 총각무우도 남아 있었으며
추위에 약한 '아욱'도 남아 있다.
물론 배추도 남아 있지만, 모든 배추들이 들판에 그대로 있기에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아마도 15일쯤이면 뽑아서 김장을 해야 할 것 같다.
30포기 심은 중에서 10포기 정도는 괜찮고, 나머지는 파란배추로 그냥 김치를 담가야 할 것 같다.
내 입맛은 시골밥상을 좋아해서 그런지, 파란배추로 담는 김치가 더 맛이 있었다.
김치를 담가서 나눔하는 여동생집도, 조카네 집에도 파란배추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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