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 봄이 왔다고 말을 하고 싶다.
들녁에는 나물을 뜯는 사람들과 농사를 지으려고 밭을 정비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매화가 활짝 피었다.
여러가지의 색깔이 있는 매화였지만 ,향기만큼은 그윽하고 달콤한 것이 공통적이다.
흰색꽃이 피는 흰매화, 붉은 꽃이 피는 것은 홍매화, 푸르스름한 꽃이 유난히 청초해보이는 것은 청매화라고 한다.
홍매화는 예쁘고, 눈속에 핀다는 설중매도 아름답지만, 청매화는 웬지 아름답다기 보다는 슬퍼보인다.
어느 순간 부터 봄은 슬픔이 있다.
세상이 떠들썩할 만큼의 커다란 안타까움도 있으며
가슴이 시릴만큼의 서글픔이 가득들어 있는 봄날은 그래도 꽃향기가 있어서 순간의 행복을 느껴본다.
신문에 난 기사 한토막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기에 글로 적어본다.
1)규모 9,0의 대강진과 10m가 넘는 쓰나미가 동일본을 덮친뒤인 11일 오후 6시,
아키타현 아키타시의 그랑티아 아키타 호텔,정전으로 암흙으로 변한 호텔 로비에선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호텔측이 '전기가 들어올때까지 숙박객을 받을 수 없다고 안내하자 로비에 몰려 있던
숙박 예약객 50여명은 조용히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노약자들이 앞에 세워졌다.
암흙 속에서 일렬의 줄이 생겼다.
순서를 다투는 모습은 일절 없었다.
잠시후 호텔 측이 '정전으로 저녁을 제공할 수 없다'며 긴급용으로 우동 10그릇을 가져 왔을 때다.
우동그릇을 향해 달려 들기는 커녕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고객의 허기를 걱정하며, 뒤로 뒤로 돌리는
양보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피해가 가장 컸던 미야기, 이와테현을 비롯, 일본 전역에서 주인 없는 상점에서
약탈하는 행위가 있었다는 뉴스는 단 한건도 없었다.
우동10그릇을 50여명이 서로 '먼저 드시죠, 아닙니다. 전 아직 괜찮습니다'
앞에서 배려의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라는 메이와쿠 문화에 세계가 놀랐다고,
어느 특파원이 쓴 '일본의힘'이라는 글이다.
2) 한국에서 재해 보도를 할 때 희생자를 취재하는 것은 보통이다.
시신이 안치된 빈소와 병원의 모습이 시시각각 비춰진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 보도에서 일본 언론은 달랐다.
쓰나미로 가옥과 차량이 쓸려 내려가는 장면이 TV에 자주 비쳐지지만
어느 채널에서도 쓰나미에 휩쓸려가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죽은이도 이 세상에 남는다'는 일본인의 특유한 사생(死生)관 때문이지만
울부짖거나 흐느끼는 모습도 좀처럼 화면에서 보기 힘들다.
TV아사히의 한 관계자는 "재해 에방을 위한 목적 외에는 일반 시민에게 큰 충격을 주는 화면은 최대한
억제 한다는게 재해 보도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말했다.
복숭화꽃 인줄 알았는데, 매화였다.
은근한 매력을 가진 꽃 색깔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들판에는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꽃 주인 덕택에 다양한 색깔의 꽃을 볼 수 있었다.
겨울을 지낸 오리나무의 열매와 새봄에 새롭게 태어난 신참 열매가 이색적이다.
설마 구관이 명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데....
들판 한가운데 있는 매화 밭이다.
가까히 다가서니 벌써 어디서 왔는지.
벌들이 마냥 바쁘다.
향기가 온 들판에 퍼져나가 들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다.
홍매화도 청매화도 예쁘지만, 흰색깔을 띤 매화는 깔끔하고 고고해보이는 선비 같다.
은근한 매력에 밭 임자가 없는 매화 밭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시간을 보냈다.
봄바람이 불고 아지랭이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밭 고랑을 넘어 다니면서 열심히 매화의 친구가 되어본다.
푸르른 보리싹이 제법 크다.
밭뚝에는 솜털 같은 쑥이 나오고 있고, 언 땅이 녹아내린 밭에는 냉이가
어느새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밭주인이 남겨놓은 김장배추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더니 개선장군처럼 씩씩하게 겨울을 이겨내고
노란 꽃을 피웠다.
세상 모진 풍파에 시달린 흔적이 보인다.
마늘 밭에 심어놓은 매화나무에도 잘 여문 수수알처럼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배추밭에도 매화나무가 그래도 때가 되니까 꽃은 피고, 그리고 열매도 맺을 것이다.
저녁햇살이 비치는 오후 밭 주변과 매화나무도 조명을 받은 듯하다.
상추밭, 마늘 밭, 배추 밭, 시금치 밭에도 매화나무는 한그루씩 심어져 있었고,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이른 봄의 농촌 풍경이다.
흙먼지 날리는 밭 한가운데에서 세상에다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는 매화였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뽀오얀 먼지를 뒤집어 쓴채 향기를 내뿜고 있다.
이곳 저곳 들판을 쏘다니다보니 석양 빛에 그림자가 생기는 늦은 오후가 되었다.
너무도 엄청난 자연재해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TV속의 속보, 특보를 보다가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해서
들길로 나오보니 생각치도 않게 매화 세상을 만났다.
나는 이렇게 꽃을 보며 답답함을 해소시키고 있건만, 나라 밖의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시름이 멈춰질런지...
하루 빨리 복구가 되길 기원해보지만, 너무도 엄청난 자연이 주는 대재앙 앞에서 그저 긴 한숨만 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