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날아갈 것만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일기예보에 나타나는 오늘의 기온은 27도였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25도 정도였다.
폭염의 늦여름날에 1시간 정도 걷기운동을 하면서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믿어줄런지?
이 정도의 기온이라면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만...
그렇지만 갑자기 시원해진 이유는
순전히 일본을 관통한다는 10호 태풍 산산 때문이라는 것인데
마냥 좋아 할 일만 아니라는 것이 떨떠름했다.
왜냐하면 "태풍의 진로가 이곳 동해 남부로 스쳐 지나가지 않을까"였다.
엄청 강하고 골치 아픈 태풍이라서 은근히 걱정도 해본다.
그렇지만 한참 가을 김장채소 씨를 뿌리기 위해서 밭만들기 중인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촉촉하게 비 까지 내려주니 일단은 고맙기 까지 했다.
죽기살기로 더웠던 열기도 사라지고, 촉촉한 비와 바람...
10호 태풍 산산이 이런 고마움만 가져다 준다면 뭔 걱정이 있겠나만은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서 은근한 걱정이 스트레스가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은 할 일이 없는 날이었고
그런 날은 미뤄놨던 일들을 꼼지락거리면서 정리하는 날인데
텃밭에서 수확을 해온 후
그냥 미루기만 했던 것들로 반찬을 만들어보면서
모처럼 시원하기만한 하루를 진짜 괜찮게 보내게 되었다.
울퉁불퉁 여주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서
들길을 지나면서 일부러 사진을 찍어봤다.
왜냐하면 텃밭에서 따왔던 못생긴 호박 때문이었다.
여주의 원산지는 인도였으며
외국에서는 여주 열매를 식용한다고 했다.
쓴맛이 심한 열매인데...
어찌 식용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당뇨약으로 약용을 하니까
그것만 신경쓰고 있었다.
호박넝쿨이 나무 숲 사이로 뻗어가면서 수정이 된 후
나뭇잎 그늘에서 자라고 있던 호박을 따다놓고
진짜 못생겼다고, 흉물스럽다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구경을 시키면서 흉을 봤다.
언뜻 여주 열매를 닮은 것 같아서
호박 맛도 쓴맛이 날 것 같아서 그냥 버리려고 까지 했었는데
그렇지만 맛이 너무 궁금했고
사실 썰어놨을때, 호박속이 많이 궁금했었다.
호박은 울퉁불퉁 했지만
함께 따온 호박잎은 너무 부드러웠다.
일단, 호박을 썰어서 호박을 기름에 부쳐서
호박나물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호박을 썰었더니
생각보다 훨씬 호박속은 깨끗하고 예뻤다.
혹시 애호박 수준이 아니고 조금 늙었기에
씨가 생겼을줄 알았더니
씨도 없고 호박 껍질도 부드러웠다.
호박나물을 하기 위해서
살짝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호박을 부쳤다.
잘 부쳐진 호박은
그냥 초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겠지만
내가 즐겨먹는 호박나물을 하기로 했다.
그릇을 살짝 기울게 해놓고
호박에서 나온 물을 빠져나오게 했다.
국간장, 참기름 ,깨소금 ,마늘 다진 것
식초 1스푼 그리고 갈색설탕 1스푼
그리고 대파와 땡초 곱게 썰은 후
뒤적 뒤적...나물 무치듯 했다.
여러종류의 호박 반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호박나물인데...
늘 부담없이 잘 먹는 밑반찬이지만
호박 부치는 것이 귀찮아서
자주 만들어 먹지는 않는다.
기왕에 밑반찬을 만들기로 했으니까
시장에서 사다놓고 냉장고에 미뤄놓았던
미역줄기 밑반찬도 만들어봤다.
나물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미역줄기인데
왜 냉장고 속에서 며칠동안 머물게 했었는지?
염장 미역줄기이니까 소금기를 제거하기 위해
30분 동안 물에 담가놨다가
먹기좋게 가위로 썰어놓은 후
마늘 다진것, 국간장으로 밑간을 했다.
미역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매실청 한방울과 참기름을 넣고 볶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깨소금으로 마무리...
꼭 잡채를 먹는 그런 맛이라서
미역줄기 나물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잡채를 꽤 좋아 하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일년에 한 두번 해먹는 것도
진짜 웃기는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그래도 잡채를 자주 해먹을텐데...
혼자서 꿈지럭 거리는 것이 싫어서
늘 대충 대충....그렇게 산다는 것도 재미는 없다.
텃밭에서 호박잎을 따왔다.
호박잎만 먹기에는 조금 밋밋할 것 같아서
아껴서 가끔 먹고 있는 2년 된 묵은지를 밥에 싸먹으려고 물에 휑궜다.
사실 여름철에 입맛 없을 때는
호박잎 보다는 묵은지 휑궈서 밥 싸먹는 짓을 가끔씩 해보는데...
2년 된 묵은지 쌈밥은 진짜 밥도둑이었음을 자랑해본다.
호박잎에 빡빡된장을 싸먹는 것도 맛있지만
그래도 묵은지 휑군 것을 싸먹으니 밥 두그릇은 먹을 것 같았다.
차돌박이 쬐끔 구워서 묵은지와 함께, 시원한 캔맥주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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