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깊어가는 가을날의 텃밭

nami2 2023. 10. 3. 22:47

갑작스런 추위도 아닌 전형적인 가을날의 이른 아침 기온은 18도 였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식을줄 모르고 무더웠던 9월이었건만
10월이 시작되면서

황송할 만큼의 서늘함은 오히려 감기가 찾아들지 않을까 하는
괜한 염려스러움이 겉잡을수 없는 인간의 변덕스러움에 그냥 웃어본다.

추석 전 후로 너무 바쁜 일상이었으므로 일주일만에 텃밭에 나가봤다.
날마다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면 으례 텃밭으로 나갔던 습관도
바쁘기만한 일상에서는 어쩔수 없었나보다.

우선 가장 골치 아팠던 텃밭의 고라니는  
이런저런 얄팍한 지혜로 단도리를 잘해놔서 마음은 놓였으나
그동안 달팽이가 김장배추를 얼마나 뜯어 먹었는지
또한 풀은 얼마 만큼 자라고 있을 것인지
케일 잎사귀 위에 파란 벌레가 얼마나 붙어서 갉아먹고 있는지
마음은 텃밭으로 가있었지만  몸은 그러지 못했음이 늘 불안불안 했었다.

바빴던 시간들은 그럭저럭 마무리 되었고
이제 일상으로 복귀된 것 같아서 이른 아침에 텃밭으로 들어섰더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텃밭 곳곳에 심어놓은 코스모스였다.
주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일주일 동안
텃밭을 지키고 있던, 키가 훌쩍 큰 코스모스들이
가을날의 10월 텃밭을 참으로 예쁘게 만들고 있었음이 고맙기만 했었다.

여름날, 모진 비바람의 태풍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몽땅 쓰러져 뒹굴던 코스모스들을
일으켜 세우고, 지지대로 묶어주고

다른 잡초들의 넝쿨들에게 휘감기는 것을 보호해줬더니
이렇게 예쁜 꽃으로 

진짜 멋진 가을날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고맙기만 했다.

8월 태풍에  이미 없어졌어야 했던 코스모스들을

채소 가꾸듯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더니
꽃이 피는 가을 텃밭은 진짜 아름답기만 했다.

가을꽃이 핀 텃밭을 바라보며 

누구든지 '예쁘다고..'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그런 것들이 즐거움이 되어주는가 괜히 우쭐해진다.

 

본격적으로 꽃이 피고 지고...

아마도 12월 초 까지 꽃이 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텃밭에 코스모스를 심어놓은 이유였다.

가을무우가 제법 풍성하게 자라고 있길래

오랫만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봤더니
아직은 만족할 만큼 병충해는 없었다.

배추도 결구를 하고 있어서
배추 속을 들여다봤더니 다행히 달팽이 흔적도 없었으며
속이 노랗게 고갱이가 들기 시작했다.

잦은 비에 염려스러웠던 당근도
제법 예쁘게 자라는 모습에 안심했다.

그물망을  하지 않았다면
일주일동안 고라니 밥이 되었을텐데
다행히 잘 크고 있는 '오크상추' 모습이다.

그물망속의 치커리!!
얼마나 고라니가 침을 흘리고 쳐다봤을까
다행히 오늘 아침에 여유롭게 치커리를 뜯을 수 있었다 .
내 몸도 야채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

그물망속의 적양배추 한포기가 자라지 않는  이유는
고라니에게 시달렸기 때문이다.
뿌리 활착 되지 않은 모종의 잎사귀를 몽땅 먹고

내동댕이 친 것을 다시 심었더니, 살아야 함을 포기 한 것 같았다.
다시 모종을  사다 심을 수 밖에 별 방법은 없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나중에 했더니
다른 양배추는 그런대로 잘 크고 있었다.

그물망속의  청상추도 별 탈이 없었다.

그물망을 해놨더니
손을 집어넣고 상추 뜯기가 불편했지만
고라니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는

조금 불편한 것이 낫지 않을까 중얼거려봤다.

 

일주일 동안 뜸했던 텃밭은
인디언감자 아피오스 꽃을 비롯하여
많은 꽃들이 예쁘게 피고 있었다.

칡꽃을 닮은 인디언감자 아피오스 꽃인데
칡꽃 처럼 달콤한 향기는 아예 없었다.

텃밭에서 가장  우아한  모습이 된

맨드라미꽃이 제법 예뻐 보였다.

나물밭의 쑥부쟁이  꽃이 엄청 피고 있었다.

잡초라고 뽑아내기만 했던 '여뀌'도
텃밭을 야생화 밭으로 만드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여름부터 피고 있는 채송화는

가을이 되면서 더욱 예쁜 모습이다.
이렇게 오래도록 꽃이 피는줄 몰랐었다.

완전 끝이났는줄 알았던 풋호박의 생명도
꽤나 강인해보였다.
그동안 일손이 부족해서  넝쿨을 걷어내지 않았을뿐인데
이렇게 호박이 맺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호박 열매가 자라서  우리집 주방 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는
호박의 의지에 달려 있을뿐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물밭 옆에는 이른 봄날에 돌미나리가 자라는 도랑가였다.
그런데 여름내내 정신 못차리게 만든 잡초는 고마리였고
요즘 메밀꽃 처럼 하얗게 피고 있는 모습이 예쁜
가을 야생화 고마리인데...
이것들이 잡초였다면 이미 낫으로 베어버렸을텐데
그래도 꽃이 피는 식물이라는 야생화였기에
풀이 저절로 사그러지는 12월 까지  그냥저냥 봐주려고 한다.

 

쑥부쟁이꽃, 참취나물꽃, 부지깽이나물꽃과 어우러진 고마리꽃
덕분에 어디가 밭인지, 어디가 도랑가인지  구분도  안되고
풀 숲에서 뭐가 나올까봐 무서워서 접근도 못하고 있지만 

예쁜 꽃밭을 만들어버린 가을은 깊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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