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태풍이 다녀간 그 뒷날에

nami2 2023. 8. 11. 22:19

어디서 부터 어떻게 수습을 해야할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텃밭을 바라보면 그냥 맥이 빠지고 멍해졌다.
날씨라도 우중충하거나,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준다면
평소처럼 차분하게 일을 할 수 있었겠으나
양심도 없는 하늘은 바람 한점 없이 햇볕은 더욱 쨍쨍 이었고

이른 아침 야속한 기온은 29도였다.

태풍이 다녀간 후였기에 습기까지 가득하니
몸은 무겁고, 땀은 흐르고, 기분은 최악이었다.

 

커다란 바윗돌 같은 것들이 바람에 날아 다닌 흔적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이나 농기구들이 바람에 먼 곳 까지 날아간 모습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찢어진 비닐과 플라스틱 종류의 쓰레기
이곳 저곳의 과수나무들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속에 파묻힌 텃밭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파편의 아수라장 같았다.
더구나 고라니 녀석 때문에 만들어놓았던 울타리가 부서져서
망치질 부터  시작된 복구작업은....
혼자서 취미로 농사짓는 텃밭이라도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은
순전히 태풍이 가져다준 커다란 고통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6호 태풍 카눈, 7호 태풍 란,  8호,  9호....
릴레이식으로 바짝 뒤를 쫒는 태풍들로 인한
해안가에 불어오는 강풍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는
신이 아닌 이상은 정답은 없었고

다만 그냥 이곳 동해남부 해안가를 비켜가길 기원해볼 뿐이다.

늦여름 부터 초가을 까지 생겨나는 태풍의 무지막지함에
인내심 테스트의 시험대에  계속 오르내려야 하는 것이
자꾸만 스트레스가 되어서 텃밭 포기 까지 생각을 하건만...
그래도 하늘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반문하는 것 처럼
맑고 푸르기만 하늘에  뭉게구름 까지 마음을 뒤흔든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 바라본 하늘은
티없이 맑은...
뭉게구름 까지 아름다운 그런 풍경이었다.
하루 전에 강력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고
누가 믿어줄런지?

석류의 앙증맞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텃밭에서는 바위 같은 돌덩어리들도 날아다녔는데
어찌  다소곳하게  매달려 있는 것인지 신기했다.

들판이나 어느 곳에도 꽃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 태풍에 꽃잎은 모두 떨어져 나갔고

잎사귀 마져 모두 망가졌는데
그런데 끈질긴 무궁화가 예쁘게  살아남은 모습을 보았다.

웬만하면  무궁화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태풍으로 인해서 모든 꽃들이 사라졌기에
어쩌다가 눈에 띈 무궁화꽃 사진 한장을  어렵게 찍어봤다.
무궁화의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우리 아파트 화단가의 '흰겹무궁화'는
태풍이 비켜간듯 제법 예쁘게 피어 있었다.

                 흰겹무궁화

우리집 베란다에서
우아한 향기를 내뿜는 애플쟈스민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여름내내 피고 있다.

애플쟈스민꽃의 꽃봉오리는
쉼없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기특했다.

요즘 빨간고추를 따내는 계절이기에
집집마다 고추 말리느라고 바쁜...
시골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걷기운동을  끝낸 저녁 6시50분
휴식을 하기위해 아파트 소공원 의자에 앉았다.

무심코 바라본 하늘은
혼자 바라보기에는 너무  멋진 모습이었다.

 

내가 앉아 있던 위치는 동쪽을 바라보는 하늘이었기에

석양의 빛은 서쪽이 아름다울텐데... 하면서도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 처럼 멋진 하늘을 바라보며

저런 모습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인가
어둠이 찾아드는 아주 짧은 동쪽 하늘이었지만

내 나름대로 머릿속에는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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