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거센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nami2 2022. 9. 6. 21:47

재난 안전 문자가  1분에 한개씩   쉼없이 드나들면서 긴장을 시켰던  지난밤은
공포스럽기만 했던  악몽의 시간들이었다.
태풍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밤 1시쯤에  억지로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쯤에
23층 아파트가  송두리째 날아가는듯한, 거센 바람소리에  잠이 깨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겁쟁이가 견뎌야 하는 밤은  더이상 잠을 잘 수 없게 했다.

커다란 유리창이 깨질까봐  걱정스러웠고
정전이 되는것을 지켜보는 것도  싫어서 ,불도 켜지 않은채
스마트폰의 실시간 방송만  들여다보면서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은  악몽 그 자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밖은 훤하게 날이 샜고, 아파트 마당가에서는 두런두런 소리도 들렸다.

태풍이 부산을  지나갈 때는  미련을 두지않고  쉽게 지나갔다는  아침뉴스를 보면서  
오전 8시 30분쯤 창문을 내다보니
미쳐서 날뛰던  거센 바람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듯 했다.

간밤에 폭풍우가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게 했는지 조차도 아랑곳 하지 않은듯한

삼잎국화 꽃의 갸녀린 모습이  텃밭으로 가면서 눈에 들어왔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연의 순응은 어쩔수 없나보다.

 

일단  텃밭으로 가기위해  아파트를 나서면서   

아파트 작은 공원의  나무들은 뽑히지 않은채 멀쩡했고  

익어가는 열매도 단 한개도 떨어지지 않은채  다닥다닥이라는 것에 안심을 했다.

텃밭은 멀쩡할까?

10분 정도 되는 들판 길을 걸으면서  벼라별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텃밭으로 가는 들판 곳곳은 엉망이었으나  설마....

마음을 졸이면서  텃밭으로 들어서는 순간, 태풍이 지나간 텃밭은 쑥대밭이었다.
텃밭 작물 중에서 가장 아끼던  가지나무가  송두리째 뽑혀서  뒹굴고 있었다.
보라빛 가지꽃이 예뻐서 11월 까지 꽃을 보겠다고 했는데

가지나무의 모습은  정말 망연자실이었다.

 

어제  저녁 6시 까지만 해도 예쁜 모습의  가을 무우 새순이었는데

물폭탄에 나뒹굴은  무우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은 땅이 질척거려서  손을 쓸 수 가 없었다.

 

노각오이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던 오이 넝쿨  그리고  

고춧대가 빨간 고추와 함께 싱싱하게  서있던 모습들도  거센 폭풍우에

송두리째  뿌리가 뽑힌채 뒹구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초가을을 맞이해서  예쁘게  달리던 애호박 넝쿨의 지지대도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찬바람이 나면 달착지근하고 더 맛있어진다는 애호박은

이렇게 지지대와 함께  쓰러져서 종지부를 찍게 했다.

아쉬움도 그렇지만, 원상태로 복구 한다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먹음직스럽게 , 예쁘게 잘 자라던  대파의 모습을 보고서는 
진짜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렇게 쓰러진 녀석들을 어떻게  복구를 해야할지?

 

물통마다 뚜껑을 덮고,  5키로 정도 되는 큰돌덩이  두개씩 올려놓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단도리를 잘했으나
혼자서도 간신히 들을 수 있는 무거운 돌덩이와 함께

뚜껑이 모두 날아가버렸다면, 과연 바람의 세기는 어느정도였나  기가막혔다.

알바하는 집이 해안가라서  전화로 안부를 물었더니  

해안가에는 해일이 덮쳐서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또 엉망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을 살펴보로 가봤더니  

전복죽을 팔고 있는 해녀의 집들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있었다.

 

해안가 바다에서 바라본 풍경은 엄청났다.

해일의 후유증이 가셔지지 않은 바다는  성난 파도가  대단했다.

바라볼 때 마다 평온스러워 보였던, 예쁜 가을바다는 어디로 가고

흙탕물로 뒤범벅이 된 바다는 무섭기만 했다.

 

해일의 후유증은 큰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무서울 만큼의 집채만한 파도는  여전히 공포를 만들었다.

해안가의 예쁜 카페는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해일 피해를 입었다.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상가들은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낙지집, 횟집, 전복죽집, 장어집, 그리고 호떡집....등등

불한당 같은 태풍에 의한 해일이 덮쳐서, 당분간의 삶의 터전을 짓밟았다.

 

언제 태풍이 왔었는지
언제 해일이 덮쳐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는지
뒤집어진 바다는 아직 이었지만, 파란  하늘은 일단  평온해 보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알바하는 집은 지대가 높아서 큰 피해는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본다.

바람 한 점 없는 티없이 깨끗한 하늘가의 나무 위에서

왜가리는

태풍이 휩씁고 간 어수선한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 했다.

제수 준비로 시장을 다녀오면서

늘 다니는 수변공원 주변에서 가끔 만나게 된 왜가리의 모습이다.

 

폭풍우가 있었던 밤은 지나가고, 하루만에 세상은 이렇게 달라졌다.
태풍이 할키고 간 흔적은 이곳 저곳에서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는데
평온해 보이는   들판을  어떻게 봐줘야 할런지?

 

텃밭을 생각하는 마음은  망연자실함 + 씁쓸함이었다.

추석이 코 앞이라서 제수준비로 바쁘게 움직여야  하건만
볼품없이 나뒹굴게 된 텃밭을 어찌 복구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우선 지지대를 빼내고, 넝쿨을 걷고, 빗물로 다져진 밭을 삽질해야 하고

거름을 하고, 씨를 뿌리고

쓰러진 대파를 일으켜 세워서  원상복귀로 다시 심어야 하고...

아마도 당분간은  떫은 감을 씹어먹는 듯한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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