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석사는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번지 집현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 말사이다.
집현산 응석사는 신라시대, 진흥왕15년(55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
연기조사께서 창건하신 사찰 중에서 응석사는 서부 경남에서는 가장 오래된 1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전통사찰이기도 하다.
응석사'일주문'
범종각 밑으로 경내를 들어가야 하는 응석사의 일주문과 종루 사이에는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철쭉이 피는 계절에는 아마도 응석사 입구에는 철쭉꽃으로 장식된 극락세계가 되어 있을 것 같다.
응석사 '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응석사 '범종루'
종무소가 있는 요사채 건물이 쓸쓸해보인다.
응석사 대웅전 앞의 '다층석탑'
대웅전 내부의 '삼존불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1호)'
과거,현재,미래를 나타내는 삼세불상으로 조선 후기에 확산된 형태이다.
복장 유물에 의해 조성연대가 1643년으로 확인되어 이 시기에 조성된 삼존불은
그예가 드물어 보존가치가 뛰어난 불상으로 불상의 규모가 학술적 가치가 높은 불상이다.
수문장처럼 대웅전 앞을 지키고 있는 응석사 나무들
높은 나뭇가지 위를 올려다보니 새 둥지가 멋스럽다.
대웅전 뜰앞의 오래된 석물과 당간지주
요사채 앞에 놓여 있는 슬리퍼가 쓸쓸함을 말해준다.
인등을 켜야하는 이유는....
인등(引燈)~부처님 전에 등불을 켜는 것
불교에서인등은 밝음과 지혜를 상징한다.
부처님 전에 인등을 밝히는 것은 마음이 밝아져서 지혜를 얻고, 모든일이
순조롭게 풀리어 장애가 없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이끼가 낀 오래된 돌담이 응석사의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다.
돌담 모퉁이에 땅에 묻은 항아리는 혹시 김치가 아닌가 하고 뚜껑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응석사 '독성각'
우리나라에 독성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693년(숙종19년)이며, 18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찰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설로 십육나한 중 한명인 빈두로존자로 보기도 한다.
흰머리와 흰 눈썹 등 외모상 비슷한 점이 많고 신통력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법시대에 나타나 미륵불이 오기전 까지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재앙을 없애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말에 나반존자 신앙이 더욱 성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험이 큰 성인이나 성격이 매우 엄하고 무서워 공양 드릴 때는 목욕재계는 물론이고,공양물도 제대로
갗춰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찰에는 대개 그림으로 모셔져 있다.
응석사 독성각 기둥에서...
응석사 경내에는 이런 석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설명을 해줄수 있는 안내문도 보이지 않는다.
응석사를 지키는 많은 스님들의 모습에서 정겨움을 느껴본다.
천년고찰 응석사의 고려시대에는 지공,나옹,등 많은 스님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 유정스님과 진묵일옥스님 등이 머물러 화엄도량으로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문수전,극락전, 비로전,나한전,영산전, 팔상전 등
163개의 방이 있었을 정도로 컸다고 했지만
1592년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몰려와 관음전에 참배하던중 관음상 밑에 숨겨 두었던 무기가 발각되자
건물을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신라말 풍수지리학의 시조이며 대가인 도선국사가 이곳 응석사에 주석하면서
모감주 나무를 심어 대를 이은 고목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 96호로 지정되어 있고
지금도 그 열매를 따서 염주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응석사 뒷쪽에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된 무환지 나무도 있다고 하는데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전설로 전해지는 이 나무는 응석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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