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진현동 15번지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누구나에게 잘알려진 불국사의 경내는 사적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천년고찰이다.
불국사 일주문
불국사 천왕문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국보 제 23호)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되는 다리이다.
다리 아래의 속세와 다리 위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두 계단 중 아래 것은 17단의 청운교,위의 것은 16단의 백운교로서
전체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못한
서른세가지의 단계를 말한다. 청운교는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는 흰머리 노인의 인생을 상징한다.
통일신라 시대의 33층 돌다리로 석가모니의 불국세계를 통하는 33계단은 33(天)을 상징하는 것으로
헛된 욕망을 버리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걸어올라가는 다리로서 45도의 경사가 져 있다.
불국사 대웅전
꼬맹이들이 비가 내리는날 수학여행을 왔다.
평일이지만 불국사 경내는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 분위기였다.
대웅전 꽃살문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무영탑)국보 제 21호'
불국사의 두개의 탑(석가탑, 다보탑)은 석가와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유행했던 쌍탑의 하나이다.
불국사 다보탑 (국보 제 20호)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
신라 석탑 형식과는 매우 다른 이형(異型)석탑이다.
법화경의 견보탑품의 근거해서 건립된 것으로 다보여래를 상징하는탑
불국사 관음전
관음전의 꽃살문
한국 33관음성지 제 23호 불국사
관음전의 후불탱화 '천수관음도'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한전의 '소탑지(小塔誌)'
<탑을 쌓는 공덕>
신라시대의 탑이 마치 기러기떼가 날아가듯 서라벌 곳곳에 즐비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법화경에서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모래탑을 쌓더라도 한량없는 복락을 받아 부처가 된다'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옛부터 돌로 작은 탑을 만들어서 자신의 소원을 기원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러한 이유로 불국사 나한전에는 많은 참배객들이 자연적으로 하나 둘씩 돌탑을 쌓아서 소망을 기원하는
소탑지가 형성되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돌탑이 잘 보존 될 수 있도록 소탑지를 조성하여 누구라도 탑을 쌓는 공덕으로 소원이 이루워지길...
불국사의 범종각
불국사 삼존불 석좌대
읽어보면 참고가 되는 글
몇십년 전의 학창시절 수학여행때의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다.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국보 제22호)
불국사 극락전 앞의 안양문으로 오르는 통일신라 시대의 돌다리
세속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진다.
연화교는 구성면에서 다른다리와 비슷하지만, 층계마다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는점에서 독특하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8단의 칠보교가 있다.
1916년 일본인들에 의해서 해체 수리되면서 일부 변형 되었고, 돌난간은 1973년 복원공사때 설립되었다고....
불국사 범영루
지금은 법고가 있으나 원래는 범종각이었다.
751년에 세워졌다.
여러차례의 중수와 중건을 거쳤으며, 1973년 불국사 복원 때 엣모습대로 새로 세워졌다고 한다.
범영루 안 거북이 등 위에 있는 '법고'
불국사 당간지주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했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의해서
혜공왕10년 (774)에 완공을 했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다보탑,석가탑,청운교, 백운교, 극락전,무설전, 비로전 등 80여종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략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극락전,자하문,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1973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