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868번지에 위치한 '용문사'는 남해 군립공원으로 지정 되어 있는
호구산(해발627m)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호랑이가 누워 있다는 모습을 하고 있는 호구산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찰이며
대한 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 말사이며, 전통사찰로 지정된 천년고찰이다.
용문사 '일주문'
속세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 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용문사 '일주문'의 현판은 청암 이상만선생의 글씨이다.
용문사로 들어서는 천왕교라는 다리를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무더운 여름날인데도 시원하고 맑은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용이 승천 했다는
용소로 흘러 들어가는 소리만 들어도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용문사 '천왕각'
일주문을 지나서 만나는 '천왕각'은 숙종 28년(1702)에 지은 건물로 용문사의 관문이다.
봉서루
봉서루는 용문사의 정문으로 대웅전 정면과 마주하고 있다.
봉서루 계단에 올라서면 용문사 경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구유
많은 대중들의 밥을 퍼두는 함지 밥통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구유'는 큰 통나무 속을 파내고,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큰 그릇인데 많은 신도들이
운집하는 법회나 대작불사를 회향할 때와 유사시 승병들의 밥을 퍼두는
용기로 쓰였으며,1000명 정도의 밥을 담았을 정도의 큰그릇이다.
봉서루 내부
설법전으로 이용하고 있다고하니,법회 때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할 수 있을것 같다.
범종각
범종은 사찰에서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시각을 알리기 위해 치는종이며
지옥의 중생에게 불음을 전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용문사 법당
명부전
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된 용문사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님은 원효대사가 직접 조성하고,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명부전'은 대원력의 상징인 지장보살을 중앙에 모시고, 명부의 시왕을 좌 우로 모시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요사채
용화전 석조보살좌상
용문사 용화전에는 석조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용문사 경내 정화불사를 하다 법당 마당에서 출토되었다는 이 보살상은
보관에 영락 비천을 착장하고 있으며,고려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산전, 칠성각 뒷산에는 스님들께서 재배하시는 차밭이 있다.
용문사에서는 스님들이 재배하신 '차'를 판매하는데, 차 맛이 좋아서 한봉지만 사온 것이 후회가 될 정도이다.
적묵당
본래 선당으로 건조되어 선방으로 씌였으나, 후세에 들면서 사부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수행하며,
산중회의도 개최 하는 등 다목적으로 쓰이는 공간이다.
용문사 '대웅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보호되고 있는 용문사 대웅전은 현종5년에 일향스님이 건립하고 지해스님이
지해스님이 윤색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숙종 29년(1703)에 성화스님이 중창한것이다.
대웅전에는 사찰이름을 따라 용머리 조각이 많이 있어 더욱 웅장하고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용문사는 호국사찰이기에 많은 대중이 모이므로 야외 법회 할때 사용하는 괘불탱화가 있다.
남해 용문사 괘불탱화는 보물 제 1446호이다.
탐진당
승당으로 학승들의 수행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2003년에 중건하였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봉서루'
탐진당 댓돌 위에 놓인 스님들의 사계절 신발 모습들
호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의 창건 연대는 신라 문무왕 3년(663) 신라 원효대사께서
금산에 세웠다는 보광사가 뒤에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의 용문사가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사찰이 불타버리고 나서 여러차례 중건하였다.
조선 숙종때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의 승병이 활약한 공으로 인해 수국사(守國寺)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대웅전 계단을 오르는 스님의 뒷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이시다.
특히 바람소리 들으며,좁은 산길을 걸어가시는 스님의 뒷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서 가끔 사진에 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