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적막한 겨울숲으로 가는 길

nami2 2023. 1. 2. 22:29

2023년(계묘년) 새해가 밝아왔다.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것은...
늘 그랬던 것 처럼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지나간 날들의 회한이었음을 생각해본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마음속으로 한번 정도는 지나간 날들을  뒤돌아보면서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 새로운 계획에 도전해본다는 것은
그것은  새해 라는 밝은 희망의 빛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지켜내지 못할 자신과의 약속에 픽~ 웃어본다.

이것 저것 참 많이도 바빴던 12월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르튼 입술이  아물지도 않아서 고통스럽기만 한데
그래서 새해 첫날이 하루 지난 오늘 만큼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말 푹~ 쉬려고 했었다.

 

그런데  단 한 곳이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와서 쉴 수 없게 했다.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지나쳐버린 그곳
마음속 깊은 곳 까지 헤집어 놓는  그 무엇에 이끌려
또다시 숲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겨울 숲의  솔바람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적막한 숲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 그리움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리움이 머무는 숲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도 드나들지 않는

앙상한 겨울숲 그 자체였다.

즐비하게 늘어선 겨울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것은

바람소리와 새소리뿐인데, 그것들이 정겹게 들려온다는 것은

어느새  이런 길도 혼자 걷는 것에 면역이 된듯...

쓸쓸하거나 두렵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않은 호젓한 길이 되었다.

 

마을 버스에서 내려 40분 정도의 숲길을 걸어오니  

따끈한 커피 한잔이 생각났다.
누군가  마련해 놓은 쉼터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쉬고 있는데

암자에서 흘러나오는 목탁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정말 인기척이라고는 나무 위에서 날개짓을 하는 새소리뿐

겨울 숲은 적막했고, 바람은 차거웠다.

육신은 보이지 않지만, 영혼이 쉬고 있는 곳

이쪽 저쪽의 갈림길에서 발길을 멈추고 그냥 숲을 바라보았다.

 

한 해가 다가기 전에 엄청 나를 기다렸을텐데...

그 먼 세상 까지 휴대폰이 터진다면

해를 넘겨서 찾아갔음에 '미안했다는' 메세지를 남겼을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려봤다.

 

그리움이 머무는 곳이다.
지난 가을에 다녀왔으니까  3개월 정도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는 빨간 덜꿩나무 열매가 보였고, 보랏빛의 야생화도 보였는데...

역시 겨울 숲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줌의 재가 밑거름이 되어준 숲속의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그래서 새가 지저귀고 드나드는 곳

그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영혼과 육신의 만남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움이 머무는 숲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려와서
나무 위를 올려다봤지만...
새는 찾을길 없고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숲속에서 새들의 친구가 되어버린  우리집 아저씨!
어디선가  바람소리에 영혼을 싣고와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그냥  스스로 위로를 해봤다.
그쪽 세상에도

새해가 밝아온 것을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새해인사를 전했다.
마음 편히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잘있느냐고...

숲 주변에 야생 감나무가 눈에 보였다
얼었다 녹았다 무척 단맛이 나는 야생 감나무에서

많은 새들이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래도 감을 먹고 있는 한 녀석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암자 주변의 감나무에는 산까치들의 세상이었다.
시끌 시끌하면서 떠드는 소리
그들의 세상도 인간세상 못지않게 시끌벅적이다.
아무도 없는 숲속 한켠에서 혼자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숲을 내려오면서 암자에 들렸지만
깊은 숲속의 암자도 역시 쓸쓸한 것은 마찬가지
오늘은 암자를 지키는 멍멍이도 보이지 않았다.

 

개는 아주 작은 강아지도 무서워서 뒷걸음질 치는데
유일하게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 암자의  멍멍이 녀석은

벌써 4년째 눈으로 인사를 하고 지낸 사이였건만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암자가 더 쓸쓸해보였다.

 

암자 뜰 앞의 명자나무에 꽃망울이 보였다.
날씨는 추운 겨울인데
벌써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꽤나 반가웠다.

언제쯤 꽃을 피울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암자 뜰앞의 감나무는 먹음직스러울 만큼
완전 홍시가 다 되었다.

온갖 숲속의 새들은

암자의 감나무가 아니더라도 먹거리는 충분하건만

감을 따낼 생각은 없는듯 보여졌다.

 

그대로 말랑말랑, 쫀득쫀득 곶감이나 되거라

감나무를 쳐다보면서 한마디 했다.

 

감 뿐만 아니라 아그배 열매도 역시 새들의 먹거리였다.

직박구리가 유일하게 잘 먹는 아그배열매도 어느새 

말랑말랑 제리가 되어가는 듯 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예쁘게 피던 동백꽃들이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아직도 한파라고 하는 추위는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데
어렵사리 꽃을 피운 동백꽃도 추위에 지쳐가고 있는 듯 보였다.

 

이곳 저곳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동백꽃 조차 보이지 않은 겨울 시간들이 지루하기만 했었는데,

집 주변에서 동백꽃 두송이를 만나게 되니

반가움이 활력소가 되는 것 같은 꽃귀신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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