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산사의 풍경

가을 흔적이 남아있는 암자

nami2 2022. 12. 16. 22:59

싸늘함이 옷속으로 파고드는 영하의 날씨를 피부로 느끼게 되니까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래!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지 않는가" 중얼거려봤다.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이른 봄인지 가늠할 수 없었던 계절 탓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부랴부랴 서둘렀던 김장...

바쁘기는 했지만, 아파트라서 추운줄 모른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며칠동안 진짜 추웠기에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잘들 견디고 있는지

텃밭의 채소들과 꽃이 피고 있는 녀석들을 살펴보니

월동채소들은 싱싱했고, 쌈채소들은 비닐 이불을 덮어 주었기에 무사했다.

그러나 흙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꽃을 피우는 녀석들은 여전히 싱싱해보였으나

나무 위에 있는 장미꽃들은 거의 수난을 겪고 있었다.

강인한 척 했던 장미꽃의 안하무인 행동은 조금 무모하지 않았나?

걷기운동 핑계대고 곳곳에서 꼬랑지 내린 장미꽃들에게 이별연습을 했다.

아무리 계절을 무시하는  장미꽃이라도

동장군 앞에서는 고개를 떨굴수밖에 없는 현실이 암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본격적으로 영하의 날씨가 되기 전에 다녀온 암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꽃나무가 아니라 감나무뿐이었다.

가을이 지나서 겨울이 찾아오는 삭막한 숲에서는

주황색의 예쁜 감들이 주인공 노릇을 하는듯 했다.

 

 이곳 암자의 감나무 주인은 까마귀였다.

까마귀들이 성문을 지키는 병사처럼...

높은 망루에 앉아서 망을 보는 것 처럼 보여졌다.

 

쓸쓸함이 가득 들어있는 고즈넉한 암자에서

저녁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산속의 암자에서 게으름을 피운탓에

산그림자가  발걸음을 바쁘게 했다.

 

새들의 먹거리치고는 너무 아름다웠고 먹음직스러웠다.

지금까지 따지 않는 암자의 감들은

모두 겨울새들을 위한 보시품이기에 구경만 해본다.

 

나무위에 새까맣게 앉아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까마귀들이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모두 날아가서 다른 나무에 앉았으나

이녀석들 두마리는 카메라앞에서  멋진 폼을 잡고 있었다.

 

손을 뻗쳐서 잘익은 홍시감을 한개 땄더니

어린아기 주먹만한 작은 감속에 씨가 엄청 많이 들어 있었다.

설탕보다 더 달고, 아이스크림 보다 더 시원한 감이었지만

씨를 빼내고 나니 먹을 것이라고는  한숟갈 정도였다.

흔히 말하는 무공해의 야생 감 그것이었다.

 

인기척이 없는 조용한 암자에서는

스님의 뒷모습만 보아도 반갑기만 했다. 

 

요사채 앞에서 꽃꽂이 해놓은 국화꽃인줄 알았다.

그런데 물이 흐르는 수조 앞에서

이렇게 싱싱한 국화꽃이 피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진짜 한아름의 국화꽃이었다.

 

범어사 산내암자 내원암으로 가는 길

 

가을이 떠난 것 같은  쓸쓸한 산속의 암자에서는

장독대가 멋진 풍경으로 다가왔다.

물론 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염하고, 우아하고, 고상하고, 단아한 모습의

아름다운 장미꽃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듯 했다.

어찌나 예뻤던지

예쁜 표현이라는 것을 모두 나열해가면서 칭찬해주고 싶었다.

 

낙엽 위에서 꽃이 핀 한송이 흰장미!!

산속에서 내려온 가을요정 같았다.

 

내원암 산신각 둘레길이었는데

산그림자가 길게 내려앉아서 들레길 걷는 것은 생략했다.

 

애기동백과 장독대는

멋진  작품 사진이 될 것 처럼  잘 어울렸다.

 

산등성이와 한옥 기와지붕 그리고 애기동백꽃이

떠나고 있는 가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절대로 겨울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침 찾아 갔을때는

대웅보전 법당에서 영가천도재를 지내고 있었다.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하얀 애기 동백꽃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발걸음을 멈춘채, 염불소리에 귀기울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 부처님이시여

유주무주 고혼 영가들을 부디 굽어 살펴주옵소서 ()()()

 

내원암 산신각 둘레길은 이곳으로도 연결된 것 같았다.

물소리가 들려오길래  길 따라서 숲속으로 들어 갔더니

차겁게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암자 주변의 숲길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쓸쓸했다.

바람이 불때마다 나풀나풀 떨어지던 낙엽들이

어느새 폭삭한 낙엽이불을 만들어 놓은듯 했다.

 

이른봄 낙엽위로 빼꼼하게 얼굴을 내미는

노란 양지꽃이나 남산제비꽃을 기다려보면서

겨울동안 바람따라 가지말고 그대로 이런 모습으로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낙엽길을 밟으며, 산 길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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