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산사의 풍경

겨울 암자에서

nami2 2022. 12. 27. 22:00

어느 곳이라도 암자의 겨울은 마냥 적막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평소에도 인기척이 없는 고즈넉함이 있는데
휑하니 모든 것들이 잠자는듯한,삭막한 암자는 겨울 그 자체만으로도  

사색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매료되어  

혼자만의 기도 하는 시간도  오히려 감사 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겨울 암자를  더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날씨가 춥든지 말든지

혼자만의 시간을

얼음장 처럼 차디찬 마루바닥의 법당에 조용히 앉아서 

천개의 염주를 굴리며 기도 한다는 것이 고행이 될지라도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이 내 마음속의 극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암자 뒷곁에서 사그러드는 꽃들 사이에서 보물찾기를 했더니

겨울 찬바람을 맞으면서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천일홍이 아름답기 까지 했다.

초가을날에는 꽃들이 많아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꽃일뿐인데

꽃이 없는 삭막한 겨울 꽃밭에서는 참으로 귀한 존재처럼 보여졌다.

 

천일홍의 여유로운 모습속에서 또하나의 강인함을 배우는듯 했다.

언제까지 흔적을 남기려는지는 모르나

겨울이 끝나가도록 저런 모습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래본다.

 

보타암 약사전 앞에서 바라본 영축산이

이 계절이 겨울이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연꽃이 사그러든 작은 연못의 겨울 풍경

이런 곳에서 또다시 새싹이 나오고

우아한 연꽃이 핀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겨울 그 자체도 쓸쓸하지는 않았다.

 

담쟁이 넝쿨로 그려진 벽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메말라가는 잎사귀였지만, 자연스럽게 그려놓은 벽화는

아마도 새봄이 찾아올 때 까지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멋진 예술작품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생명력이 없는듯, 바스락거릴 같은 단풍잎의 겨울은

이런 모습만으로라도

삭막한 산비탈을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감사했다.

 

암자 담장가에

빨간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있었기에

삭막한 겨울에 훈기가 있는듯, 예쁘게 보여졌다.

 

민들레 꽃은 영하의 겨울도 잊고 사는 것 같았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또다시 꽃을 피우는 모습이 예쁘기만 했다.

진짜 생명력이 강한 식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겨울에 노란꽃이 한없이 반갑기만 했다.

 

삭막하기만한 겨울날, 암자 뜰앞에서의 빨간 남천 열매는

화사함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꽃보다 더 예쁜 열매였기에 자꾸만 눈에 띄는 귀한 존재였다.

 

새들의 겨울 먹이는 피라칸사스 열매도 훌륭한 것 같았다
야물딱지게 파먹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그 열매가 그렇게도 맛있냐고 새들에게 묻고싶어졌다.

특히 직박구리 녀석에게....

 

이 쓸쓸한 겨울의 마지막 단풍인듯...

찬바람에도 퇴색되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수가 있었다.

이땅에  아름다웠던 가을이 절대로 없었던 것 처럼

참으로 귀한 존재로 보여져서 감사하기만 했다. 

 

점점 사그러드는 단풍의 시간들이

쓸쓸함을 만들어주는 참으로 삭막한 겨울날이다.

그냥 마음속 까지 추워지는 것은 주변이 더욱 쓸쓸했기 때문이다.

 

낙엽이 쌓인 길에서 말할 수 없는 적막함을 느껴본다.

그래도 혼자 걷는 길이 평온한 것은

이 길을 따라 암자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가득한 숲길에는 찬바람만 불어왔다.

싸락눈이라도 내린다면  더욱 분위기 있게 걸어보련만...

 

얼음장 밑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소나무 향기가 어우러진 솔바람소리, 그리고 숲속의 새소리가 있는

암자로 가는 길은 쓸쓸했지만 그런대로 분위기가 있어줘서

아무것도 없는 겨울이라는 계절에도 참 걷고싶어지는 길이었음을 강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