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해무속을 넘나드는 바다 풍경

nami2 2022. 9. 2. 21:41

하루종일  끊임없이 내리던  비가 그쳤는지
이름모를 풀벌레들이 소리높여 장단  맞추는 것을 보니
한밤중에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는듯,  빗소리에  조금은 안심을 해보았다.
그러나   11호 태풍 '힌남로'의  경로가
부산을 거쳐 간다는  정보에  자꾸만 불안감을  만든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연중행사 처럼, 해마다 추석쯤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태풍은
올해도 역시  부산을 흽쓸고 지나간다는 것이  예외는 아닌것 같다.
벌써 부터  아파트 관리실에서  들려오는  스피커에서는
태풍에 대한 대비책으로  협박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물론 조심하라는 소리겠지만

강풍으로 인한  커다란 창문이 깨질 것을 대비....
며칠동안  태풍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을  어찌 넘겨야 하는 것인지?

강풍과 비를 동반한  태풍의 위력앞에서
또다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큰 숙제가 되는듯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평소에  집근처의  바다는 이렇게 평온한 바다였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도 파랗고  수평선의 흰구름 까지 참 멋진 바다였다.

가끔 걷고 싶을때는 아무생각없이 걷는 바다였는데 

갑자기  마술을 부리는듯  이상한 바다가 되고 있었다.

 

추적추적  조용하게  비 내리는 날에  

볼일이 있어서 해안가에  나갔더니 갑자기 바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어렴풋이 보여지는 등대가 없었다면, 이곳이 바다였었는가

초행길의 여행자가 봤다면  의아해 했을 것이다.

 

어리둥절해서  발길을 멈추었더니  해무속으로  바다가  들락날락...  
희미하게 해무가 낀  바다는 

생각없이 봤을때는  멋진 장면으로 둔갑중인 것으로 보여졌다.

바다를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있는 존재는  자연뿐이라는 것에 할말을 잊었다.

 

투썸 플레이스 라는 커피전문점이 사라졌고, 팔각정이 사라졌으며

파란 등대가 완전하게 사라졌다.

꼭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20분이 경과되니까  바다는 다시 맑아졌다.

팔각정 앞의 두꺼비 바위와 등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지나가던  여행자들에게는 괜찮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바다는  사라졌다.

이제는  완전하게 형체도 없이,  그냥 안개속이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사진 찍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다가 둔갑을 하는 신기한 모습에 어찌 사진 찍는 것을 마다할 것인가?

10년을 넘게 해안가 산책을 해봤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고

마당끝이 알바하는 집이라서 

주말과 휴일에  10년을 지켜봤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사라진 해안가의 건물들이 보일락 말락

신기한 다큐영화를  보는듯

40분이 지나도록  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바닷가의 풍경들이 해무속에서 더 멋진 모습이 되는 것 같았다.

다큐영화를 찍듯...

어떻게 변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바다가 전해주는 둔갑술의 묘미가  정말 재미있었다.

 

해안가  바로 옆,  농장의 모습은  이렇게 멀쩡했다.

바다라는 것이 순간적으로  해무의 포로가 되는 것은 아닌지?

 

바다가 아닌 곳에서는

흐린 하늘이  열리고 있는 것 처럼 ,하늘도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바다는 해무의 포로가 된채,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왕고들빼기꽃

 

시간이 1시간쯤 지날 무렵 , 해안가 풍경은 제 모습이 보이는듯 했다.

평소에  늘 걸어다니는 해안가도

해무속에 갇혀버리니까  참 멋진 모습이었다는것이

한시간 남짓,  자연이 전해주는 다큐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태풍이 스쳐지나갈 이곳도  어떻게 부서질 것인가  걱정이 앞섰다.

지난해에도  온갖 시설물들이  태풍에 의해 엿가락 처럼  되었고

해안도로가 파괴되고, 이름있는 상가들이 모두 쑥대밭이 되었던 것이 1년전이다.

태풍.... 부디 무사하기만을 빌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