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

비 내리는 날의 노란수제비

nami2 2021. 8. 17. 21:53

아무런 예고도 없이 생각치도 않았던 비가 하루종일 내렸다.

이른 아침 부터 텃밭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늘 버릇이 되다보니

내리는 비 때문에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게 된 것이 어쩌다 한번인데 꽤 지루함을 느꼈다.

편안하게 누워서 뒹굴거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고, 무언가를 해야만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일을 또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제주도에서 단호박이 택배로 오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비행기 타고 날아왔다.

물론 보내온 사람의 이름은 서울의 여동생이지만, 산지에서 직접 수확한 제주산 단호박이었다.

건강에 좋으니 꼬박꼬박 열심히 먹으라는 동생의 당부가 있었으나

사실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 단호박 1상자(35개)를 먹는 것은 멀미가 날 만큼 버거운 일이었다.

별미로 한 두개 정도 먹는 것은 괜찮은데, 혼자서 35개를 먹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주변 지인들  한테 10개 정도 나눔하고도, 25개 남은 것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3개씩 찜기에 쪄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오며가며 간식으로 먹으니 먹을만 했다.

 

 

먹기 좋을 만큼 단호박을  손질해서 찜기에 찐후, 통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오며가며 출출할때 차거운 단호박을 꺼내 먹었더니, 어느새 12개를 먹어치웠다.

 

지난해는 먹기 싫어서 지인들께 25개를 나눔하고, 그냥 썩어서 버린 것이 6개였고

내가 먹은 것은 4개 정도였는데....

올해는 벌써 12개를 먹어 치웠음은, 맛보다는 순전히 단호박 효능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은 먹다보니 호박맛에 길들여져서 그런대로 먹을만 해졌다는 것이다. 

 

며칠전에 지인 집에서 먹었던 단호박 수제비가 생각나서 따라쟁이를 해봤다.

비는 내리고, 할일은 별로 없고...

평소에 수제비도 잘해먹지 않은채, 어쩌다가 지인집에서 얻어먹는 '별미 수제비'로 만족하고 살았는데

나로서는 진짜 큰일을 벌려보았다.

잘될지 안될지는 나중 일이고, 우선 시도를 해봤다.

 

잘 손질한 단호박1개를 전자렌지에 3분30초 정도 돌렸다.

 

색깔이 예쁜 노란수제비를 만들려면, 파란 색깔의 껍질 부분은 제거해야 했다.

원래 단호박은 껍질째 먹는 것이므로

노란 부분은 수제비용으로 하고, 파란 부분은 벗겨내서 두유를 넣고 갈아서 마셨다.

*우유를 넣고 갈아 마시는 것이 원칙인데, 나는 우유를 마시지 못하는 바보라서 두유를 넣어야 했다.*

 

노란 호박에 생수를 넣고, 믹서기에 돌려서 호박물을 만들어 놨다.

호박이 잘 갈아지기 위해서는 물을 적당하게 넣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물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았다.

 

단호박 1개로

1인분의 수제비는 절대로 불가능 했고, 5~6인분의 호박물이 만들어졌으니

반죽도 5~6인분이 되는 것 같아서 황당했다.

그래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격려를 해봤다.

 

솔직히

수제비 반죽은 5~6년에 한번 정도 해봤기 때문에 약간은 서툴렀다.

 

평소에 집밥 종류는 어떠한 것이라도 자신있게 만들수 있지만, 밀가루 반죽은 자신이 없어서

칼국수나 수제비는 지인집에서 얻어 먹거나 사먹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힘들게 힘들게  수제비 반죽을 끝냈다.

남들이 하는 것 처럼, 열심히 치대고 또 치대면서 쫄깃해지라고 계속해서 중얼거려봤다.

 

진짜, 수제비 반죽은 5~6인분 정도 분량이 되었다.

아마도 혼자서 다섯번 쯤을 해먹게 될 것 같았다.

냉장고에 숙성을 시켰다가 저녁쯤에 수제비를 끓이기로 했다.

 

다시마,양파, 무우, 멸치를 넣고 진하게 다싯물을 끓여서

감자 1개를 썰어넣고 반쯤 감자가 익었을때, 수제비를 최소한으로 얇게 떼어 넣었다.

수제비가 거의 익을 무렵, 다진마늘과 대파와 땡초 1개를 썰어넣었더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던 수제비였고, 한번 더 먹어도 괜찮을 맛있는 수제비가 되었다.
비내리는 날에 심심해서 만들어본

단호박 수제비는 색깔이 예쁜 노란 수제비가 되어서, 건강한 별미의 맛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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